저는 매일 출근할 때마다 우리학교의 교화인 백합에 관심이 많아 쳐다봅니다. 순결, 깨끗한 마음, 정결한 마음, 고상한 기품을 상징하는 백합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백합은 한 선생님께서 밑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비료를 한 까닭인지 작년보다 훨씬 크게 자라고 있습니다. 꽃을 사랑하는 한 선생님의 정성을 먹고 자란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중앙현관에 하얀 꽃이 핀 일년초가 심겨진 화분이 양쪽에 나란히 놓여 있는데 키가 쑥 자란 것을 보게 됩니다. 이도 역시 매일 이른 아침마다 일직하시는 오 주사님께서 정성을 들여 물을 주는 걸 보았는데 정성을 먹고 자란 일년초는 보답이라도 하듯 흰 꽃으로 활짝 웃으며 출근하는 선생님들의 기분을 산뜻하게 합니다.
학기초에 왼쪽 이마에 피부병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기는 싫고 해서 집에 있는 약을 발라도 낫기는커녕 계속 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장 선생님께서 피부병을 보고는 병원에 가보라고 하시면서 보건 선생님을 불러 바르는 약, 먹는 약을 저에게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 약 먹고 바르고 나니 거짓말 같이 깨끗하게 나았네요. 보건 선생님에게 감사하다고 말씀 드렸더니 교장 선생님께 감사하라고 하네요. 그도 그럴 것이 교장 선생님의 관심과 배려가 없었다면 병원에 갔을지도, 늦게 나았을지도 모르지요.
저는 선생님들에 대한 관심과 정성이 적은 것 같아 늘 죄송한 마음 가지고 있습니다. 한계를 느끼지만 마음으로는 여러 선생님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정성을 매일 쏟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피부에 와 닿지 않겠지만 사실은 그렇습니다. 저의 ‘내리정성’이 여러 선생님에게 있어야만 여러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까지 ‘내리정성’이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가져 봅니다.
우리학교 선생님들의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정성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정성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학생들에게 쏟는 땀과 정성이 있기에 학생들은 봄을 맞아 쑥쑥 성장하고 있지 않나 봅니다.
‘하찮은 일도 정성들여 일하면 귀하게 보인다. 선생님의 배려와 정성을 먹고 자란 아이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의 배려와 정성을 먹고 자란 아이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우리에게 기쁨과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공장에서 정성들여 만든 물건은 불량제품이 아니라 우수제품이 되어 우리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듯이, 집에서 정성들여 만든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 되어 먹는 이로 하여금 기쁨과 건강을 가져다주듯이, 밭에서 정성들여 키운 채소는 풍성한 먹을거리가 되어 기쁨과 영양을 공급해 주듯이 땀과 정성으로 교육한 학생들은 많은 세월이 지나도 외면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기쁨과 유익을 안겨다줄 것입니다.
몇 년 전 40대 중년 여 제자로부터 편지를 받고는 한때 기뻐했던 것도 총각시절 정성을 들여 교육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교육은 정성입니다. 변함없는 정성, 지속적인 정성, 끝없는 관심과 아낌없는 정성을 쏟아놓으면 분명 언젠가는 좋은 제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기쁨과 유익을 줄 것입니다.
김남조 시인의 시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는 한때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비는 뿌린 후에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스스로운 사랑으로 주고 달라지 않으리라 아무것도/ 무상으로 주는 정 자욱마다엔 무슨 꽃이 피는가 이름 없는 벗이여’처럼 아무런 보상 없이 빗물 같은 정을, 사랑을, 칭찬을, 격려와 인정을 시시때때로 나누어 주고 관심과 정성을 쏟아놓으면 학생들에게 쏟은 관심과 정성이 거름이 되고, 물이 되고, 비료가 되어 관심과 정성의 자욱마다엔 예쁜 꽃, 좋은 열매를 반드시 맺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