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월요일 5교시. 3학년 6반 교실에서 출석을 부르려다보니 마치 톱니 하나가 부러진 것처럼 휑하니 빈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평소 잘 익은 옥수수의 고른 치열을 보는 것처럼 가지런하던 교실의 모습이 그 빈자리 하나 때문에 그만 균형이 깨져 버렸다.
"누가 결석한 거냐?"
아이들은 내 질문에 실실 웃기만 할 뿐 선뜻 대답을 하지 않는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무슨 직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 혹시 가출한 거 아냐?"
그제야 이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개, 바람 좀 쐬러 갔어요. 아마 한참 걸릴 걸요." "그래? 어디로 갔는지 너희들은 아는 모양이구나." "네. 지금 중국에 있대요." "와, 요즘은 가출도 국제적으로 하는구나. 그래, 중국에서 뭘 한다니?" "그건 저희들도 몰라요."
바깥 날씨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춘곤증은 몰려오고 성적은 오르지 않고…. 정말 고3 학생들에겐 요즘처럼 어려운 때가 없다. 이 무렵이 최대 고비인 것 같다. 이 때만 잘 넘기면 슬럼프도 회복되어 목표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데 그새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들은 '가출'이란 단어만 나와도 깜짝깜짝 경기를 할 정도로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가출도 잘만 하면 전화위복이 된다. 마침 졸음이 물밀듯이 몰려오는 5교시 수업인지라 아이들 잠도 깨울 겸해서 내 가출 경험담을 들려주기로 했다.
"선생님도 가출 경험이 있단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들은 선생님도? 하며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다.
직접적인 원인은 완고한 아버지와의 갈등이었지. 설상가상으로 대학마저 낙방하고 말았어. 하다 못해 똥장군을 지는 대학에라도 합격하면 소원이 없겠다던 아버지의 윽박지르는 말씀에 그만 앞뒤 가리지 않고 집을 뛰쳐나왔지.
동네에 사는 1년 후배와 기타 하나 달랑 메고 용산역에 내렸단다. 생소한 서울 지리와 현란한 환경에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걸었어. 석탄더미가 산처럼 쌓여있는 길을 걸었고, 긴 철도 레일이 깔린 길을 지나 어느 허름한 여인숙에서 가출 첫날을 보냈단다.
당장이라도 취직이 될 것 같더니 하루 이틀이 지나도 취업할만한 곳이 없더군.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은 점점 떨어져가고. 하는 수 없이 우린 무작정 서울역으로 갔지.
서울역에 도착하니 광장 한켠에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더군. 우리도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무슨 네모진 딱지 같은 것의 한가운에 붉은 점을 찍어 놓고, 한 남자가 열심히 위치를 바꾸어 놓으며 붉은 점이 찍힌 딱지를 맞추라는 거야. 만약 맞추면 걸었던 돈의 세 배를 준다는 거였어. 수중의 돈도 점점 떨어져 가고 또 빨리 돈을 벌어야한다는 욕심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그만 후배 녀석이 먼저 돈을 걸었어.
아뿔싸, 분명 빨간딱지를 찍은 것 같았는데 열어보니 아닌 거야. 순식간에 오만원이 날아갔지. 우리에겐 큰돈이었는데 말야. 잃은 돈을 되찾아야겠다는 욕심에 내가 다시 오만원을 걸었지. 이번에 맞췄어. 순간, 빙 둘러선 사람들의 표정이 험상궂게 변하는가싶더니 마구 욕설을 해대기 시작하는 거야. 그 때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경찰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판은 순식간에 걷어지고 패거리들은 눈 깜짝할 새에 지하도로 사라져버리는 거야. 그래 우린 채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비상금 전부를 날려버렸단다.
얼마가 지나서야 우린 그 사람들이 야바위꾼이란 것을 알았어. 그땐 참 순진했었지. 하는 수 없이 후배와 나는 다시 기타 하나 달랑 메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단다.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주위 사람들에 대한 쑥스러움으로 후배와 난 고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앉아서 한참을 망설였어. 집에 들어갈까 말까하고 말야. 그때 고향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가 어찌나 정답게 느껴지던지.
드디어 풀죽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탕아를 아버지가 보셨어. 소 여물을 삶으시다가 말이지. 아버지는 슬픈 표정으로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시더니 이상하게 말이 없으시더군. 지금도 아버지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단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으니 내가 가출하던 날 아버지는 생전 처음으로 우셨다는 거야. 그 뒤, 난 아버지의 눈물과 무언의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열심히 공부했고 드디어 대학에 합격했단다.
가출을 통해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알았고, 또 야바위꾼들로부터는 세상을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도 배웠고. 아무튼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이만큼이나마 앞가림을 하면서 사는 것도 다 그 때의 그 가출 경험 덕분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어. 화가 복이 된 셈이지. 그렇다고 절대 너희들에게 가출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