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언양여상(현,미래정보고)에 있을 때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한 분이 계십니다. 이 선생님의 첫인상은 매우 착잡한 편이었습니다. 처음 보면 호감도 가지 않고 끌리지도 않았습니다.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몸매에 외모는 그저 그렇습니다.
이 선생님의 참모습을 2학기 되어서야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외모에 비해 깔끔한 옷차림. 흐트러짐 없는 선비 같은 자세. 작으나 당찬 모습...등 머릿속에 그려져 있던 좋은 모습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선생님은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이지만 불령(不佞)인 것처럼 비쳐졌습니다. 불령(不佞)이란 재주가 없는 사람이란 뜻으로 자기를 낮추어 일컫는 말이 아닙니까? 그분은 진짜 불령(不佞)입니다. 재주가 없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자입니다. 재주가 넘치고 유머와 위트가 넘실거리며 재치가 뺨칩니다. 그러면서도 뽐내지 않으며 나타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자기 존재마저 숨기려 합니다. 나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학급관리는 아주 당차게 잘 하십니다. 그 해 교지내용 가운데 학급 소개란을 읽어보면 이 선생님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호박+멋쟁이+귀염둥이 1-3반을 아시나요? 우리 반의 호박들을 이끌고 계시는 대장은 ○○○ 선생님이십니다. 어떨 땐 재미를, 어떨 땐 호랑이 성품을 지니신 ○○샘은 착함과 성실을 주장하시면서 결석이나 조퇴 등은 곱게 보지 않고 바로 혼쭐내십니다. 학기초만 해도 첫 인상이, 여 선생님이라 별로 무섭지 않겠구나 했는데 그 조그만 몸에서 어쩜 그런 파워가 나오는지 참 궁금합니다. 요번에 저희 반에 환경미화 1 등을 차지했습니다. 공부도 잘 못하고 떠들썩하기만 한 우리 반이 어떻게 환경미화심사에서 자랑스럽게도 1 등을 했을까요? ○○샘은 별로 표정 없이 웬일이야? 식이지만 실장과 몇몇 친구들이 선생님과 힘을 합친 1 등을 향한 협동심일거라 생각해요. ........”
이 선생님의 착함과 성실, 당찬 모습, 작은 몸매에서 나오는 파워 있는 힘, 자기 학급 학생들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 등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실제 수업에 들어가 보면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담임 닮게 되어 있는데 그 반은 유달리 수업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잘 길러지고 훈련된 학생들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1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선생님을 통해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선생님이 되려면 적어도 이 선생님과 같은 인격, 성품과 사랑, 열정 그리고 지식도 함께 갖추어져야 하리라 봅니다. 선생님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능력이 어느 선생님 못지않게 탁월합니다.
도움이 필요할 땐 얌전빼지 않고 빈틈없이 협조하는 협동의식, 교만하지도 않고 나서지도 않는 불령(不佞)의 자세, 항상 깔끔하고 깨끗하게 단장된 모습, 조금도 흐트러짐이나 구김이 없는 인품, 당차면서도 똑소리가 날 정도의 매끈한 학급관리, 어느 동료선생님과도 모나지 않는 원만한 성격, 유머와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반짝이는 두뇌, 차랑차랑하고 아름답고 고운 목소리, 경상도출신 선생님들의 가장 약점인 사투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품위 있는 언어사용, 떠날 땐 대접할 줄 알고, 혼자서 고민할 때 관심 가져주는 너그러운 마음, 좋은 일이나 궂은 일 있으면 함께 참여하는 동료의식 등은 본받아야 할 자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함께 근무했던 한 선생님께서 ‘이 선생님은 사귀면 사귈수록 더욱 깊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물론 동감입니다. 유명한 소설가 최인호씨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더 가까워진다’라는 말이 더욱 실감납니다. 아름다운 이미지 오래 간직하시고 변질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많은 선생님들에게 보여주셔야죠. ‘이 선생님 같은 분이 울산교육계에 많이 있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도 가져 봅니다. 이 선생님은 끝끝내 침묵이 아닌 조용한 자로, 허영과 출세로 얼룩진 곳에서 흐트러짐 없는 자로 항상 굳게 서서 교단을 지킬 것입니다. 목 관리 잘 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