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를 가꾸는 우리의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우선은 나 이외에 또 다른 생명체가 곁에 살고있다는 것에 위안을 느끼는 것일테고, 덤으로 눈과 마음의 즐거움까지 취할 수 있다는 점도 우리가 화초를 가꾸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되리란 생각입니다.
오늘 수업을 끝내고 복도를 지나다 고추가 주렁주렁 열린 고추밭을 보았습니다. 복도에 웬 고추밭인가 했더니 그동안 아이들이 기르던 고추묘목에 일광욕을 시키려고 신발장 위에 옹기종기 내다놓은 거였습니다. 그래서 발냄새 나는 신발장이 하루아침에 싱그러움이 가득한 정원으로 변했더군요. 그것도 다름 아닌 고3 복도. 우중충한 회색 빛깔의 삭막한 복도풍경과 파릇파릇한 고추나무가 도열해 있는 복도풍경이 묘한 이질감을 줍니다. 그런데 그 이질감이 단순한 이질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상야릇한 아름다움으로 느껴지는 마력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고추화분은 공부에 찌든 고3 학생들을 위해 담임 선생님께서 배려한 것일 겁니다. 비록 작은 배려이지만 참으로 그 마음씀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치열한 입시경쟁의 와중에서 잠시 눈을 들어 생명의 환희를 느껴보라는 숨은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우리 교사들이 아주 조금만 신경을 써줘도 삭막한 교실이 금방 풋고추가 주렁주렁 열리는 생명이 숨쉬는 장소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탄을 연발한 하루였습니다.
아이들은, 고추나무가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며 제 스스로 싹을 틔우고 영양분을 섭취해 힘들게 열매를 키워 가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삶 또한 본인 스스로 감내(堪耐)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