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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컴퓨터를 끄고 하루 십 분만이라도 대화를

교무실에 전화벨이 울린다. 한 번 울리고 두 번 울리고 아니 아홉 번 열 번을 울려도 받는 사람이 없다. ‘받을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고 ‘받는 사람’이 없다. 누구의 귀에도 벨소리가 들리질 않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큼지막한 이어폰을 귀마개처럼 꽂고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저마다 인터넷에 몰입해 있으니 무슨 소리가 들리겠는가. 그래, 그렇잖아도 할 일 많은 학교 교감은 정보화시대를 맞아 본연의 임무 말고 한 가지 일이 더 늘고 말았다. 전화 당번 노릇이 그것이다.

인터넷의 발달,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빠름과 편함, 유용함에 우리 모두가 탄복하고 있지 않은가. 정보의 바다를 열심히 뒤져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 자료를 검색하는데 바쁜 선생님들의 노고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것이며, 순간순간의 뉴스를 신속하게 검색해 보는 것도 가르치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터이다. 머리도 식힐 겸 수업이 없는 시간에 사이버 바둑을 둘 수도 있을 것이고, 지그시 눈을 감고 컴퓨터 음악을 감상하는 동안 하루 동안의 피로가 풀려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학교는 선생님들에게 더 편하게 컴퓨터를 활용하고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까지라도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바로 지척에서 쉼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아니면 들려도 못 들은 채 하면서 까지 매달리는 우리 선생님들의 인터넷에의 몰두 내지는 탐닉현상이 가져온 부정적 교단문화가 이제는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컴퓨터와 마주하느라 동료 간의 대화가 사라져버린 교무실, 거기다가 개인주의 만연으로 남의 일은 서로 관여하지 않는 게 좋고 그저 자기업무와 수업만 잘하면 되는 식의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보니 상호 간의 무관심과 그로 인한 고립이 더욱 심화되어 학교가 하나의 작은 섬이라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는 것이다.

말로는 직장동료라고 하면서도 개인적 대화 한번을 차분히 못 나누고, 일주일에 딱 한번 있는 공식적인 교무회의 석상에서 겨우 얼굴 한번 스치고 마는, 대화를 한다 하더라도 업무적인 대화, 의례적 인사나 주고받지 가슴을 열고 대화해 볼 기회조차 사라져 가는, 심지어 학교규모가 크고 교직원 수가 많은 학교에서는 동료 교사의 얼굴과 이름조차 모르고 사는 경우까지도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교의 선생님 한분이 도로상에서 접촉사고가 나서 상대방과 잘잘못을 놓고 언성을 높이다 멱살잡이 일보 직전에 보험사의 중재로 겨우 어떻게 합의를 보고 학교로 돌아왔는데, 이상하게도 상대방의 차량이 자신의 뒤를 따라 학교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어서 아직도 해결 안 된 무엇이 있나했더니, 알고 보니 그 상대방이 바로 자기 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자기 학교 수학 여행단이 제주도로 출발한다고 해서 수업이 빈 시간을 이용하여 큰 맘 먹고 공항까지 배웅을 갔던 모 선생님, 대합실에서 출발시간을 기다리던 동료교사 한분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너려는데 마침 그 옆에 처음 보는 여성분이 함께 계시면서 다정히 얘기를 나누고 있기에 아, 사모님이신가보다 생각하고 “사모님, 처음 뵙겠습니다. 아무개입니다.”했더니 동료교사는 박장대소를 하고 그 여성분은 기절초풍을 했더라고 한다. 그 여성분은 바로 자기 학교 소속 선생님이셨는데 그걸 모르고 사모님이라 했으니….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한 울타리 안에서 한솥밥을 백 날 천 날 먹으면 무엇 할 것인가. 대화가 없다면, 서로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배려가 전제된 관계의 다리를 놓지 않는다면 그 무슨 인간애, 동료애가 싹틀 것인가. 결국 서로 간의 관계가 모래알 같다 보면 직장에 대한 소속감이 사라지게 되고, 덩달아 직무만족감 또한 현저히 떨어지게 되며 학교 정책이나 현안에 대한 방관자적 분위기가 팽배해져 학교 조직의 건강성이 심대한 위협을 받기에 이르는 것이다.

입 달린 사람은 모두가 교육혁신을 이야기 하고, 당국에서도 혁신 성과를 제고하기 위해 일선학교를 채근해가며 별별 정책들을 내놓곤 하는데, 차제에 모든 학교 모든 선생님들께 제안 하나 하고 싶다. 혁신은 거창하고 관념적인 구호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위에 계시는 몇 사람의 욕심 속에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우리 선생님들이 몸소 부딪치고 느끼는 일선 현장에서,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문제 가운데서 실천 가능한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그런 점에서 오늘부터 당장, 하루 중 점심시간만이라도 컴퓨터를 끄고 서로 간에 대화를 좀 하자고. 그래서 동료간에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나아지면 생각까지도 공유하고, 좀더 깊어지면 개인사적 기쁨과 슬픔도 함께함으로써 우리 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건강하게 꾸려갈 수 있는 진정한 교육공동체를 한번 만들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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