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가 끝났다. 바뀌는 대입에서 내신성적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많은 아이들이 내신 성적에 많은 신경을 쏟는다. 특히 일부 상위권 아이들은 1점에 자신의 등급이 결정될 수 있는 것에 자신이 받은 점수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비교해 가며 자신의 성적을 가늠하는 경우도 드러 생긴다.
교사로서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론 공부에 신경을 써서 흐뭇한 것도 있지만, 너무 점수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진정 공부의 진정성을 망각하지는 않을까, 혹은 건강을 헤치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꼭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점수에 목숨을 걸어야만 대학을 갈 수 있는건지 새삼 교사의 자리가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선생님, 1점 때문에…
“선생님 1점 때문에 ○○에게 밀렸어요. 제가 1등할 수 있었는데, 수행평가만 잘 봤어도…” “2등도 잘 한 것 아니니. 너무 개의치 말고 2학기때는 더 열심히 하렴.” “선생님 그래도 나중에 내신 반영할 때 제가 좋은 등급을 받지 못할 수 있으니까 하는 말이 아니에요. 수행평가를 조금만 더 잘했으면…”
아이는 자꾸만 수행평가 때문에 1등을 놓쳤다고 나를 원망하는 듯 했다.
“선생님이 네가 미워서 수행평가 점수를 나쁘게 준 것도 아닌데. 마치 네 말이 선생님을 원망하는 것으로 들리니 섭섭한데.” “아니에요, 선생님. 선생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고요, 제가 조금 실수를 했어 안타까워 드리는 말씀이에요.”
아이는 자못 내가 자기에게 무슨 꾸중이라도 할까봐 서인지 말꼬리를 이내 돌리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가 자꾸만 수행평가라는 말꼬리를 붙잡고 나에게 원망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아 내심 안타깝고 측은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론 교사로서 아이들 평가에 실수라도 했다면 큰 일 나겠다는 경각심도 더불어 생겼다.
내신 뿐만 아니라, 수능, 논술, 구술까지
앞으로 내신 반영이 점점 더 커진다고 하지만, 실제 몇몇 소수의 명문대학들의 어느 정도 제각각 자신들의 틀에 맞추어 학생들을 뽑고 있다. 논술이나 구술평가를 통해 어느 정도 자신들의 틀에 맞는 학생들을 뽑으려는 것이다. 이에 아이들은 내신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모두 신경써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선생님 이번 방학때는 서울에 가려고 해요. 거기가서 일류 학원도 좀 다녀보고, 논술이나 구술에 대한 정보도 얻으려고 해요.” “학교에서 보충수업도 학교 교육방송도 들으면서 공부도 해야 하는데, 서울까지 가면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니?” “선생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 제대로 공부하겠어요. 내신도 중요하지만, 수능과 논술, 구술도 준비해야 하니, 일찍부터 공부해 두는 게 낫지 않겠어요.”
공부하지 않으려고 이 핑계 저 핑계 되어가며 보충수업에 빠지려는 아이보다야 훨씬 대견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학기 중에는 내신 준비로 방학 때는 수능과 여타 여러 가지를 함께 준비해야 하는 아이들의 무거운 짐에 교사로서 한숨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다.
교사도 교사지만, 요즈음 아이들 정말 슈퍼맨이 되야 돼
문득 옆에서 나와 아이의 말을 듣고 계시던 교직 경력 30년을 눈앞에 두고 계신 한 선생님이 한 숨을 내쉬셨다.
“정말 요즈음 아이들 슈퍼맨이야. 이거 원 한 두가지도 아니고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하고, 또 준비해야 하니. 정말로 다재다능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가는 것도 쉽지 않겠어.” “선생님 그래도 예전에는 좀 덜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때만 해도 뭐 논술이니 구술같은 것은 없었거든요. 해도 형식적이지, 합격 당락에는 영향을 거의 주지 않았었는데.” “맞아, 그저 열심 교과공부만 하면 그래도 일류대학 가는 아이들도 제법 나왔었는데. 요즈음은 그래 가지고는 일류대학에 명함도 내밀지도 못하잖아.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학습을 하지 않으면 이제 좋은 대학가기도 틀렸어.”
선생님께서는 물론 예전의 교육과 시험 방식을 좋다고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요즈음 같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준비해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더더욱 안타까워 하셨다. 특히 어릴 때부터 제대로 수능을 준비하지 않으면 고등학교에 와서 교과공부만 가지고는 일류대학 진학이 어렵다는 말씀을 하시고는 문득 예전으로 돌아가고픈 향수(?) 어린 눈빛을 보이시기도 했다.
정말로 우리 아이들 힘들다. 물론 제대로 공부를 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한정되겠지만. 내신에, 수능에, 그것도 모자라 논술과 구술까지 모두 신경을 써야 하고 잘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현재 입시 상황에 대해 교사로서 그저 한숨만을 내쉴 수밖에 없다.
“선생님 그래도 즐거워요. 좋은 대학에 갈 수만 있다면 이것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어요. 시골 학교에 다닌다고 좋은 대학 못가라는 법도 없잖아요.” “그래 내 말을 들으니 선생님 마음도 즐거워진다. 모든 아이들이 너와 같이만 생각하고 행동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니.” “아이, 선생님 그렇게 되면 제가 너무 힘들어져요. 열심히 하는 학생도 있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어야….”
아이는 그저 해맑은 웃음으로 말을 잇지 않고 마무리 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마저 남은 아이들의 점수를 매겨야만 한다. 누군들 좋은 점수를 받고싶지 않겠야만은, 그래도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이가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 아이의 해맑은 웃음처럼 그저 자신의 미래를 향해 정성과 최선을 다한다면 ‘그 1점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우리 아이들이 가졌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