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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참고서 거품, 이젠 빼야 한다

16년전, 기대와 두려움으로 교단에 막 들어선 초임교사 때의 일이었다. 보충수업에 쓸 부교재를 선정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시내 서점에서 손님 한 분이 찾아왔다. 초대면의 서먹함도 잠시, 밖에서 나눌 얘기가 있다기에 따라가보니 엉뚱한 물건을 내밀었다. 자신의 서점에서 취급하는 참고서를 채택해준 데 따른 성의라고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접하고 보니 놀란 가슴을 진정할 수 없어 무작정 교무실로 들어오고 말았다.

이처럼 처음 교단에 섰을 때, 교육학에서 배우지 못한 상황을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가 바로 부교재 채택에 따른 사례금(리베이트)이라 할 수 있다. 어느 곳보다도 깨끗하고 순수해야 할 교육 현장에서 이같은 음성적인 교환이 뿌리깊은 관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애초에 품었던 교사로서의 소명의식도 차츰 희석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와같은 상황이 개인의 교육적 신념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자사의 참고서를 더 많이 판매하여 이익을 창출하려는 출판사측의 로비를 오로지 개인의 판단에만 맡기는 상황에서는 교사의 양심도 흔들리기 쉽다는 점이다. 또한 공동체 의식이 강한 교직사회의 특성에 비춰볼 때, 자칫 개인의 교육적 신념이 동료 교사들로부터 ‘미운 털’이 박힐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보조를 맞춰야 하는 아이러니도 있다.

물론 이 부분은 교육당국도 익히 파악하고는 있으나, 해결 방안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이같이 부끄러운 치부를 모른척 덮어둔 채 마냥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참고서 가격을 정할 때는 대개 15~20% 정도의 채택료를 염두에 두고 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1만원짜리 참고서의 경우, 1,500원에서 2,000원 정도가 사례금이라는 얘기다. 만약 참고서에 붙어있는 이와같은 부정한 거품을 제거한다면 당장 학부모들의 가계에도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가구의 월평균 교육비 지출액은 31만원으로, 1년 전에 비해 무려 9.9%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소비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4.1%로 나타났지만 실제 체감지수는 그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비 가운데 참고서가 차지하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학생 한 명이 매달 권당 1만원짜리 참고서를 사는 데 드는 비용이 5만원이라고 할 경우, 참고서의 거품을 빼는 것만으로도 1만원짜리 참고서를 한 권 더 구입할 수 있다.

참고서에 붙어있는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참고서 원가공개제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민간아파트 분양가를 포함해 토지와 건축원가를 낮추는 방안으로 원가공개제가 검토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참고서의 경우도 원가공개제를 통하여 합리적인 가격을 산정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참고서 판매자들의 인식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 전자상거래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학생들도 굳이 서점 이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할인된 가격으로 참고서를 구입할 수 있는데 굳이 정가를 지불하면서까지 발품을 팔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출판사들도 참고서 판매를 서점의 영업력에 의존하기보다는 보다 우수한 품질로서 인정받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공익을 추구하는 교육방송(EBS)도 감사원의 지적처럼 교재비를 부풀려 폭리를 취하는 일이 되풀이되서는 안될 것이다.

교사들의 자정 노력도 이어져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몇몇 지역의 교원단체가 중심이 되어 부교재 채택료를 거부하고 참고서의 가격을 낮추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지역의 서점들은 아예 참고서의 가격을 내려 학생들에게 공급하고 있어 학부모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부에 한정되지만, 교사들도 차제에 참고서와 관련하여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말끔히 떨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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