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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고전문학과 친해지는 방법


오늘 점심을 먹고 교정을 산책하다가 나무 밑에 탐스럽게 핀 도라지꽃 한 무더기를 발견했습니다. 마침 5교시에 아이들에게 '도라지타령'을 가르쳐야 되는데 잘 됐다 싶어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보라색이 선명한 아름다운 도라지꽃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권택명 님의 '도라지꽃'이란 시가 생각나 가슴이 울렁입니다.

도라지꽃

오를수록 늘 저만치 달아나는 산
계곡을 쓸어 내리는 바람소리처럼
어린 날 기억 속에 살아
수줍은 듯 눈을 가리고 서던
못난이 냉가슴

키 낮은 소나무들 사이사이
더욱 키를 낮추어 숨어 있곤 하던
보랏빛 연정

몰래몰래 감추어 두었던
새벽 이슬 한 방울
그리고 신선한 바람 한 줄기씩
희디흰 뿌리로 내려
초근목피 허기진 민초들을 달래주던 꽃

아직도 저녁마다
산허리에 뜨곤 하는 오각 별빛

현대인 못지 않게 우리 조상 님들도 도라지와 도라지꽃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답니다. 도라지를 소재로 한 노래 중 대표적인 것이 '도라지타령'입니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가 철철 넘치누나.

후렴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어여라난다 지화자 좋다
저기 저 산밑에 도라지가 한들한들

요염하게 생긴 처자가 대바구니를 옆에 끼고 앵두 같은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부르는 도라지타령은 단순한 타령이 아니라 성적(性的)인 은유인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합니다. 여기서 도라지는 바로 남성을, 대바구니는 여성을 상징하는데도 말입니다. 즉 본능적 감정을 유교적 가르침에 따라 철저하게 숨기고 은폐해야 했던 사회적 풍토에서 나온 노래가 바로 '도라지타령'인 것입니다.

눈을 감고 도라지타령을 음미해보면 우리 조상들의 멋과 풍류, 성적인 센스를 잘 느낄 수가 있답니다.

우리 조상들은 성(性)을 표현하더라도 이렇게 은근하고 은유적으로 멋들어지게 표현했습니다. 요즘처럼 무서울 정도로 과감하게 표현하지는 않았던 겁니다. 자극이 강하면 강할수록 권태도 더 쉽게 찾아온다는 이치를 우리 조상들은 스스로의 지혜로 터득한 것입니다.

아이들도 오늘 처음으로 이런 사실을 알았다며 매우 흥미로워 하더군요. 흔히 아이들은 우리 고전을 굉장히 딱딱하고 재미없는 학문으로 생각하는데 고전이야말로 이처럼 우리 조상들의 진솔한 생각과 삶의 방식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연서인 셈인데도 아이들은 그걸 모릅니다. 물론, 고전문학을 무조건 어렵고 딱딱하게 가르친 우리 국어 선생님들한테도 일말의 책임은 있습니다.

우리의 대표적인 민요 '정선아리랑'에도 이런 성적인 은유가 여러 군데 나오는데 도라지타령보다 좀 강도가 심한 편입니다.

앞산의 딱따구리는 참나무 구멍도 뚫는데
우리 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찾네
시어머니 줄라고 명태를 쪘더니
쪄놓고 보니 방망이를 쪘구나.

고전문학과 친해지려면 이처럼 우리 조상 님들의 가식 없는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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