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죽었다는 말이 들려올 때마다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함과 울분의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우리 교육이 어쩌다 이런 말을 듣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학교가 죽었다면, 생명이 없는 죽은 학교에서 우리 선생님들은 무엇을 가르치고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학교가 정말 죽었는가? 진짜 공부는 학교 아닌 다른 데서 하고 누구 말대로 졸업장 하나 달랑 얻기 위해, 죽은 선생님들과 죽은 아이들이 무료하기 짝이 없는 시간 따먹기 놀이나 하는 곳이 오늘의 학교란 말인가.
공교육 기관으로서의 학교가, 제대로 된 사람 만들기로서의 인간교육, 미래 사회를 선도할 인재양성으로서의 지식교육 두 가지 측면에서 국민적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국가발전과 개개인의 성장에 끼친 그 나름의 역할과 기여 또한 적지 않음에도, 일부에서 특히 언론에서 우리 교육현실의 어두운 면만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학교 무용론을 들먹이는가 하면, 학교 조직을 개혁과 변화에 대한 최후의 저항집단으로까지 몰아 교육에 대한 불신풍조를 조장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움을 넘어 그 저의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학교가 학원만 못하고, 선생님이 학원 강사만 못하다는 주장 하나만 놓고 보자. 학교 선생님들에게 다른 일 전혀 하지 말고 높은 보수 주면서 오직 점수만 올리라 하면 우리도 학원 못지않게 잘할 수 있다. 문제는 교육 본질에 대한 왜곡, 잘못된 입시제도, 선생님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없게 만드는 일선 현장의 열악한 교육 여건은 간과한 채 공교육과 사교육을 단순 비교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흥미중심으로 기사화 되곤 하는 작금의 학교관련 보도들을 볼 것 같으면, 마치 학교가 아이들 교육은 않고 무지막지한 체벌만 하는 곳인 양, 선생님들 모두가 교육자의 양심을 내팽개친 채 부도덕한 짓만을 일삼는 양 비쳐지고 있다는데서 일선에 계신 우리 선생님들은 통분을 금치 못하고 있다. 힘없고 목소리 낮으니까 이리 무시하는 것 아닌가하는 자탄의 비애에 젖는 분도 있는가 하면, 사회적 시선이 이리도 냉차고 살벌한데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의욕을 내겠느냐며 처진 어깨를 더 길게 늘어뜨리는 분도 생겨나고 있다.
물론 학교가, 또는 선생님들 한분 한분이 잘못하는 일이 있다면 그 책무의 중요성에 비추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나 있을 수 있는 특수한 몇몇 부정적 사례를 지나치게 침소봉대하고 일반화시키는 바람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활동이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교사 개개인의 자존심까지 상처받아야 한다면 이거야말로 우리 교육을 망치는 중대 죄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말로 학교의 참모습을 몰라서 그렇지, 학습지도 하랴, 생활지도 하랴, 날마다 산더미 같은 공문서 처리하랴, 너무도 많은 격무가 선생님들을 옭아매고 그로 인한 과중한 직무 스트레스가 유형무형의 각종 질병유발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책무를 차마 게을리 할 수 없어 밤이 깊도록 학교에 남아 교재연구에 열심이신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박봉 속에서도 가르치는 보람하나에 힘든 사제동행의 길 묵묵히 걸어가며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길인지 고민에 고민을 더하는 부지기수의 선생님들이 있는 한 우리 교육은 분명 밝은 미래가 있는 것이다.
세상 어느 일이 믿음 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마는, 교육자와 피교육자,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인간적 신뢰가 무너진 교육은 설령 존재한다할지라도 모두에게 백해무익하다는 점에서 학교교육 전반의 신뢰회복은 우리 교육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최후의 활로임이 분명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론을 위시한 사회적 지도층의 각성과, 국민 모두의 교육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격려가 절실함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