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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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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이런 피서 법 어떨까요?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생활 그 자체가 무디어져 간다. 더위를 쫓기 위하여 집안의 모든 창문과 현관문을 열어 놓아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이 더위는 열대야로 이어져 참다못한 사람들은 시원한 강변이나 바닷가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지금까지 이보다 더한 더위에도 아내와 나는 에어컨 없이 선풍기 하나만으로 매년 여름을 잘 버티어 왔다. 에어컨이 많이 보편화된 탓일까? 이제 아파트 내에 에어컨이 없는 집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 삼복더위에 10가구 중 7가구가 아파트 현관문을 닫아놓고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에어컨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방에서 방학 숙제를 하고 있던 막내 녀석이 도저히 더위를 참지 못하겠는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거실로 뛰어 나왔다. 녀석의 얼굴은 마치 세수를 하고 나온 듯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엄마, 우리도 에어컨 사요. 더워서 도저히 못 참겠어요. 제발 요. 네∼에."

녀석은 에어컨이 있는 친구들을 들먹이면서 계속해서 졸라댔다. 아내는 녀석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다림질만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림질을 하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서 땀 한 방울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름에 아내의 입에서 덥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워낙 더위를 못 참는 나는 막내 녀석을 거들며 말을 했다.

"여보, 녀석이 많이 더워하는데 우리 이번 기회에 에어컨 하나 삽시다."

내 말에도 아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잠시 뒤 아내는 다림질을 다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했다.

"더위는 잠시 뿐이에요. 잠깐의 더위 때문에 비싼 전기료 내며 에어컨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경제적 손실인 거 당신도 알죠?"

경제를 운운하는 아내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내 녀석은 아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계속해서 에어컨을 사자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아내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막내 녀석에게 주문을 하였다.

"OO아, 너 방학숙제로 독후감 쓰는 거 있지?"
"네. 그런데요?"
"그럼 네 방에 가서 원고지와 연필 챙겨 가지고 나와."
"왜요? 에어컨 사달라는데 갑자기 독후감은…. 짜증나게 시리."

녀석은 투덜거리며 자기 방으로 건너갔다. 나는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아내의 다음 말만 기다리며 계속해서 아내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내는 나에게도 주문을 하였다.

"여보, 당신도 많이 덥죠? 그럼 같이 가요."
"아니, 어딜 말이요?"
"가보면 알아요. 빨리 외출준비나 해요. "
"설마, 에어컨을?"

아내는 내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의미 있는 미소만 지어 보였다. 결국 아내가 막내 녀석과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대형 마트였다. 막내 녀석은 내심 에어컨을 산다는 생각을 했는지 상당히 들뜬 얼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트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었다. 정말이지 이곳은 바깥세상과 다른 곳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더위를 잊은 채 쇼핑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내는 막내 녀석과 나를 2층 도서매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많은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가족단위의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띠었다. 그제야 나는 아내의 의도를 알아챌 수가 있었다. 역시 아내다운 생각이었다.

아내는 막내 녀석이 읽어야 할 책 몇 권을 가지고 왔다. 녀석은 아내의 행동이 이해가 안가는 듯 계속해서 주위만 두리번거렸다. 그래서 나는 녀석이 보라는 듯 자리에 앉아 먼저 책을 읽었다. 녀석도 민망한 듯 아내가 가져다 준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아무튼 그 날 나는 그동안 덥다는 핑계로 읽지 못했던 책 몇 권을 아내덕택에 읽게 되었고 막내 녀석 또한 방학숙제인 독후감을 거뜬히 해치웠다. 나는 고맙다는 뜻으로 시원한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서 회를 사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이 곳 마트에서 파는 냉면이 더 맛있다며 막내 녀석과 나를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아마도 그건 잠시나마 더위를 피하고 난 뒤, 그냥 빠져나오기 미안하여 생각해 낸 아내의 센스있는 행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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