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학교에서 교장이 '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 나라의 우두머리였던 왕이 누리는 절대 권력에 일개 학교 교장 자리를 견줄 수야 없지만, 학교라는 특수 집단 속에서 교장 자리는 가히 절대적이라 할 만큼 힘을 가진 자리였고 그에 따라 교장 개인이 누리는 위세 또한 막강했던 것이다. 그래 그 시절, 교장이 갖고 있는 막강한 힘 앞에서 쩔쩔매는 교사들의 움츠러든 모습을 떠 올리노라면,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왕 앞에서 잘 보이거나 살아남으려 머리 조아리는 신하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교장 자리가 그렇게 대단하다 보니, 뜻 가진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교장 한번 해 볼 욕심에 아이들 가르치는 본업보다는 승진에 필요한 점수 따기에 혈안 되기 일쑤였다. 상전벽해라 했던가. 세상이 좋아지고 또 좋아져서 한 나라의 대통령도 자신이 가진 권력에 상응한 힘의 사용에서 한계를 느낄 정도로 백성들의 힘이 커진 나머지 옛날처럼 고분고분 따라주지 않으니까, "못해먹겠다"고 투정하는 판이 되다보니 학교인들 별 수 있겠는가. 교장 노릇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권위의 추락을 맛볼 수밖에. 일례로, 도덕적 권위나 전문적 지식 없이 구시대적 관료의식과 형식적 권위로만 조직을 이끌고자 할 경우, 목소리가 한껏 커진 선생님들로서는 아무도 그 지시나 명령에 순순히 따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 관리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개선과 개혁을 당당히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상황이 이렇게 바뀌다 보니 학교 책임자로서 교장의 말이 평교사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고 그로 인해 소신 있는 교육행정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경우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래 옛날에는 서로 해보려고 달려들던 그 대단한 교장자리도 요즘은 '못 해먹을'자리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시대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관리자는 조직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과감히 부정되고 비판받아 마땅하기에 능력 없고 무소신한 관리자로서의 교장들까지 덮어놓고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문제는 낡은 계급적 권위나 질서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기존 관리자에 대한 불신풍조가 학교사회를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조직으로 거듭나게 하는 발전적 지양의 형태로 나아가기보다 이기적 보신과 현실적 안주를 우선하는 일부 교사들의 자기합리화 세태를 조장하는 등 예기치 않은 부정적 폐해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옛날처럼 우리 교단이 본연의 염불보다, 승진이나 치부 같은 잿밥에 눈이 어두워 서로 교장교감 되려고 지나치게 경쟁하고 그로 인한 조직 또는 개인간의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결코 방치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경쟁체제 속에서 스스로의 능력을 키워 자기성장을 도모하는 차원의 경쟁유인책은 교육발전을 위해서도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최근의 일선 교단분위기는 공교육위기나 학교붕괴, 교권추락과 같은 현실적 위기와 맞물려, 위기타파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욕과 고민보다는 그럭저럭 이 혼란과 무질서적 상황을 넘기고 보자는 현실안주적인 시각과 명철보신의 태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래 웬만큼 가진 것 있고 먹고 살만한 경우, 일만 많고 해먹기 힘든 교장 교감 되려하기보다는 주어진 시간, 교실에 들어가 수업이나 해주면 임무를 다한 것으로 여기는 '편한 교사'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학년 초에 학급 담임을 임명하고 싶어도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고, 부장 보직교사를 임용하고 싶어도 과중한 업무에 책임만 무겁다보니 해 보겠다 덤벼드는 사람 아무도 없는 나머지, 한 사람씩 붙들고 담임 좀 해 달라, 부장 좀 맡아 달라며 교장 교감이 사정하고 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지기까지에 이르렀다. 지나친 기우일지는 몰라도 이대로 가다가는 일할 사람 부족으로 학교기능이 정지될 수도 있고 학교무용론이 대두될까 두렵기조차 하다.
교장 교감의 허세적인 권위, 독선과 위압적인 태도는 바로 잡혀져야 마땅하고 그런 관리자가 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과거에 얽매인 일부 교장 교감의 구시대적 작태를 청산하여 새로운 학교 지도력을 구축하는 일과는 별도로 어떤 이유로건 학생교육에 대한 선생님들 개개인의 책임과 열정의 불길이 식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학교관리에서 드러나는 지도력의 위기가 단순히 교장이나 교감 같은 관리자 그룹의 무능이나 잘못에 있다기보다, 마땅히 해야 할 직분을 소홀히 한 채 편하게만 살려는 일부 이기적인 사람들에 의해 충동질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에 유념하면서, 오로지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 본연의 목적을 중심으로 학교 구성원 모두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지도력의 구축이 이루어져서, 흔들리는 학교교육이 바로서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