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정원은 어디를 가나 모두 천편일률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네모진 벽돌처럼 잘 다듬어진 생울타리와 둥그렇게 기형적으로 전정(剪定)된 향나무들을 볼 때마다 참 의아하단 생각이 든다. 왜 사람들은 나무들이 생긴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걸까. 제멋대로 마음껏 가지를 펼치며 성장한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정원사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교정의 정원수들을 열심히 가지치기하고 있다.
나는 가끔 정원수의 신세나 학교 아이들의 신세나 서로 비슷하다는 상념에 빠질 때가 있다. 똑같은 교복, 똑같은 머리모양, 똑같은 책걸상, 모두가 똑같이 선호하는 특정 대학, 똑같은 교육 과정이 어쩌면 전정 가위를 들이대어 모두가 똑같은 아름다움을 연출하도록 강요당하는 정원수의 신세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창조주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이 둘이나 있도록 허용치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하찮은 풀 한 포기, 구르는 잔돌 하나, 나무 한 그루마다 그 태어난 의미와 존재 이유 또한 다 다른 것이다. 하물며 자라나는 아이들임에랴. 아이들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른 나무와도 같다. 우후죽순이란 말처럼 비 온 뒤의 죽순이 시시각각으로 쑥쑥 성장하듯이 아이들 또한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먹고 자란다.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은 모두가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윽박지르고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반성해 볼 일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우리 학교 도서관 대출 순위 3위를 기록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나무'란 책을 읽고 더욱더 확고해졌다. '나무'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현실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자율화와 창의력 배양은 지금의 제7차 교육과정의 교육 목표와도 묘하게 일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책에 더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남과 다른 생각,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을 키워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에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는 후텁지근한 날씨에 한 줄기 소나기처럼 청량감을 주었다. 또한 '나무'를 읽은 뒤 정작 교사인 나부터 그런 상상력에 무척 메말라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우선 나부터 항상 뭔가 독특한 생각을 해 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나서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아이들에게도 그전보다는 융통성 있는 대답과 질문을 하도록 유도해 보았다. 처음엔 당황해서 쭈삣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던 아이들도 차츰 어른들이 바라는 모범답이 아닌 진짜 자기들만의 생각을 말하려고 애썼다. 어떤 아이는 직접 학교 도서관에서 '나무'를 찾아서 읽어보곤 나한테 그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선생님, 나무에 있던 내용을 저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특히 나무와 대화를 나누거나 정서적 교감을 하는 장면은 저도 상상을 해봤던 장면이거든요. 그런데 '나무'에 진짜 그런 내용이 있더라구요. 얼마나 반갑던지....."
이처럼 '나무'는 그동안 머릿속의 창의력이 시나브로 메말라가던 나와 아이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무한한 상상력을 일깨워준 고맙고도 기능적인 책이었다.
따라서 나는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올 여름이 가기 전 꼭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역)를 만나 보라고 권하고 싶다.
첫째,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 모든 것이 시시하게 보일 때.둘째, 대화 시에 마땅한 소재가 없어 텔레비전 연속극 이야기만 하게 될 때. 그때가 바로 지적 일탈이 가득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때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