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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옆집 아저씨도 우리의 선생님입니다

오늘은 구름이 끼여 차분함을 더해 줍니다. 더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실을 둘러보니 선생님은 정말 진지하게 수업을 잘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차분하고 선선한 날 15년 전 저의 집에 세들어 살았던 아저씨를 떠올립니다. 그분이 저에게 해주신 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적이고 교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저씨는 현재 50대 후반쯤 되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당시에 아내를 여읜 채 노모와 외동딸 모두 세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아저씨는 몸집은 작았지만 아주 당차 보였고 어머니를 닮은 탓인지 천성이 착하셨고 부지런하셨으며 말이 적었습니다. 한 집에서 2년이나 같이 살면서도 인사 건네는 것 말고는 말한 기억이 없을 정도입니다.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간 어느 토요일 오후 지나가는 걸음이다고 하시면서 저의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저의 집에 계실 때 저의 머릿속에 입력된 그 아저씨가 아니었습니다. 말도 굉장히 잘하셨습니다. 약 두 시간 가까이 놀다 가셨는데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그분이 다하실 정도였습니다.

자기 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살면서 정이 들었던지 우리 집 같은 집을 사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고향 땅에 논을 일곱 마지기 샀다는 이야기, 막내 동생을 결혼시킨 이야기, IMF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지만 자기는 착실히 돈을 모아 통장에 2천만원을 예금해 두어 오히려 넉넉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이야기, 지금도 매달 50만원씩 적금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평소 직장에서 신임을 얻어 실직당하지 않고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 상사가 신뢰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 무수한 이야기들을 하셨는데 하나도 내버릴 것 없고 들을 만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중에 특히 머릿속에 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 셋 있는데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저의 집에 살고 있던 때인데 하루는 집 앞 청소를 하다가 남의 쓰레기통에서 몇 되쯤 되어 보이는 누렇게 변질된 쌀을 내버린 것을 보고 너무 아까워 그것을 집에 가지고 와서 심하게 부패된 것만 골라내고 그것을 가지고 떡을 해 먹었는데 맛이 참 좋았고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현재 이사를 가서 살고 있는 동네에 얼마 되는지 몰라도 돼지고기를 몽땅 비닐봉지에 싸서 버렸는데 개들이 와서 비닐봉지를 뜯고 돼지고기를 먹고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이야기를 하시면서 제법 흥분되어 왜 그 아까운 쌀을 버리며, 그 비싼 돼지고기를 내다버리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IMF가 5년 정도는 더 와서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는 말까지 하셨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어머니께서 옛적부터 사용해 오시던 절구통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살림도구를 제자리에 놓아 생전에 시골에서 살던 때와 같이 생활할 수 있도록 넓은 집을 마련해 주는 것이 소박한 꿈이라니 아마 그 꿈은 지금쯤 이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분의 근검절약 정신도 배우게 되고 근면성실도 배우고 되고 효도정신도 배우게 되고 형제애도 배우게 됩니다. 특히 쓰레기통에 있는 버려진 쌀을 가져와 떡을 해먹었다고 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낭비, 과소비를 예사로 생각하는 요즘 학생들에게도 많은 자극을 줄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이분의 밝고 건전한 정신과 소박한 꿈을 학생들이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우리 가정, 우리 사회가 건전한 가정 건전한 사회,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사회가 될 것 아니겠습니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분이 몸소 저희 집에 찾아와 주신 것만 해도 고마운데 저에게 많은 교훈적인 이야기와 함께 도전을 안겨 주고 가셨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아저씨 정말 존경합니다. 다음 기회가 있으면 마산에 가서 한번 만나 뵙고 그 동안의 삶의 과정을 듣고 싶고 배우고 싶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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