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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해조음


최창호

뒤집으며 옷을 말렸다. 소금물에 쩔은 공룡의 잔해 같은 암벽 밑에는 주먹보다 조금 큰 하얀 석란들이 유리알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매일 그
석란 밭에서 해룡의 새끼가 껍질을 깨고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바다의 신 투레스가 해수로 닦아주고 있기 때문인지 번들번들 윤기를 낼 뿐
좀처럼 부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재문이를 만난 그날도 나는 이 바위 등걸에 누워 배가 떠있으니까 바다처럼 보이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겋게 달구어진 태양이 바다 속에 그
요염한 나신을 담그면서 토해내는 감빛 노을과, 그 노을에 반사되어 비늘처럼 반짝이는 수평선 위에 조는 듯 떠있는 어선들을 바라보면서 내 몸에
깊어진 문명의 병과 편이에 부식된 조각들을 닦아내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져 더욱 푸르러진 바다 위로 나무 조각처럼 보이는 어선 한 척이 수면에 몸을 착 붙이고 마냥 떠있는가 싶더니 금새 개구리 울음 같은
마찰음을 내면서 가잘밭에 뱃바닥을 대고 있었다. 배 위에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어린 어부가 붉은 쇳녹이 굴 껍데기처럼 붙어있는 닻을 바다 속에
던져 넣자 ‘철썩’하는 소리에 바위 위를 어슬렁거리던 바닷게들이 빨리 몸을 숨겼다. 이 어린 어부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어망을 양어깨에 망토처럼
걸치고는 뭍으로 훌쩍 뛰어내려서는 순간 작은 몸뚱이가 허공에 매달리고 말았다. 그물에 걸린 참새처럼 파닥거렸지만 어망은 어린 어부의 목을 더욱
죄어 매고 있었다. 나는 단숨에 그 위급한 상황 곁으로 달려갔다. 앞 뒤 가릴 것 없이 바다에 뛰어 들었고 어떻게 그 줄을 끊어 내었는지
몰랐다. 긴 시간도 같았고 짧은 시간도 같았다. 이 어린 어부는 뜻밖에도 5학년 재문이었다.
멀리 수평선 너머로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피워 놓은 모닥불은 바다위로 붉은 빛을 뿌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몸을 이리 저리 뒤집으며 옷을
말렸다. 소금물에 쩔은 옷은 비릿한 냄새를 풍기면서 가죽처럼 뻣뻣해 졌다. 재문이는 아직도 아까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모닥불 옆에 해풍이
찌든 늙은 어부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직 노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는 어린 것을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에게 던져 준 어른들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르자 참아 오던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편찮으시니?”
“안 계셔유.”
섬 어린이 특유의 무표정한 대답 이였다.
“뭍으로 돈 벌러 가셨구나.”
“아뉴.”
끝까지 물어 보고 싶지 않던 질문을 마저 해 버렸다.
“그럼 재문이는 아버지를 못보고 자랐구나.”
“3학년 때까지도 계셨었는디유.”
“아, 그럼 그냥 집을 나가 셨구나.”
“아뉴.”
무성의 한 대답에 내 말이 거칠어 졌다.
“그럼 도대체 어딜 가셨다는 거냐?”
화난 나를 한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교장선생님은 실종도 모르셔유.”
바다는 완전히 검은빛을 번득이면서 가쁜 숨결을 몰아쉬고 있었다. 허연 거품이 밀려 올 때마다 아이의 배는 닻줄을 끓고 우리들을 향해 달려들 듯
사뭇 요동을 치고 있었다. 이제 이 어린것을 저 괴물에게 던져 준 자에 대한 분노가 그 아버지에게서 어머니에게로 바꿔졌다.
“이렇게 어두워졌는데 어머니는 너를 왜 안 찾으시니?”
“없어유.”
재문이는 누구에게 화풀이라도 하듯 타다 남은 나무 부스러기를 불 두덩이에 확 집어 던졌다. 허연 재가 찝질한 바람을 따라 눈송이처럼 솔밭 쪽으로
훠이 훠이 몰려갔다. 응석이나 부릴 나이에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안될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어디 가셨니?”
“……”
"대답 해.”
“행방 불명유.”
재문이는 더 말하기 싫다는 듯 잘라 말하고는 곰쟁이가 실타래처럼 뒤엉킨 통발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어린이의 비수 같은 다음 말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바닷물이 언제 밀려왔는지 운동화 콧등에서 시커먼 혀를 낼름대고 있었다.
겨울의 섬 생활을 그야말로 완전한 동면이었다. 위에서 몰아치는 바람과 밑에서 후려치는 파도로 온 섬이 뒤뚱거렸다. 참으로 길고 무서운
겨울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해도 봄은 좀처럼 오지 않을 것 같더니 5월이 다 갈 무렵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온 섬이 초록빛으로 덮이면서 큰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였다. 섬의 봄은 이렇게 갑자기 왔다.
바다처럼 파란 하늘은 논두렁에 솟아난 쑥 순처럼 여리었고 하늘처럼 파란 바다는 호수처럼 평화로운 어느 날 새벽 담임선생님이 재문이의 죽음을 알려
왔다. 바닷가로 달려갔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솔밭 아래에 모여서 수면 위를 물뱀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안 가는 듯 가는 배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바다 끝에 하늘임을 알리듯 두어 점 떠있는 구름덩이를 바라보고 있는지 모를 망연한 눈길을 그 어디론가 두고 있었다.
가냘픈 팔뚝에서 청년처럼 굳건한 힘과 안으로 굽은 작은 어깨에서 어른처럼 굳은 삶의 의지를 보이던 이 섬의 내일은 이렇게 해조가 되어 거적
아래에 누워 있었다. 나는 그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를 분노를 삼키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모래 섶을 쳐댔다. 그리고 한 웅큼씩 잡히는
모래를 연신 검은 바다에 던졌다. 찝질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을 때마다 온 바다에 짙은 해무가 드리워갔다.
갈매기가 꺼억 꺼억 울며 날아가는 해면 위에는 거무튀튀한 이강망 지주목이 서있었고 그 곁에는 낯익은 배 한 척이 고래 등줄기 같은 선복을 위로
한 채 천연덕스럽게 누워 있었다. 이강망 안에는 여우 혓바닥같이 닳고 닳은 스큐르가 물고기 대신 갇혀있었고 그 옆에는 다 헤진 운동화 한 짝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어미 곁에서 일어나기를 보채는 새끼처럼 뱃전을 집적거리고 있었다.
한 발 앞으로 다가선 바다가 비늘처럼 번들거리더니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장엄한 아침이었다. 거적위로 재문이가 배시시 얼굴을
내밀었다. 지금까지 감정이 없어서 표정을 못짓는 것이 아니라 표정을 만들 살점이 없어서 무표정했던 모습과는 달리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와락 재문이를 끌어안았다.
“그래 이놈아 이제는 ‘사망’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이렇게 갔느냐…….”
봄을 건너 뛴 섬은 이제 그 고난의 겨울을 벗으려는 순간 재문이는 이렇게 그냥 가버리고 말았다. <충남논산 용남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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