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이 보름이상이 남은 지난 주말에는 전국에서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하는 인파가 산야에 넘쳐났다. 낫으로 산소에 난 풀을 깎아주던 옛날의 벌초와는 너무나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초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마치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연상된다. 한 집안에 보통 2-3대의 예초기로 한나절이면 벌초를 마치는 집안이 많다.
경향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의 묘에 풀을 깎아주면서 묘소를 손질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깎은 풀을 갈퀴로 긁어모아 버리는 사람, 낫으로 덜 잘린 풀을 깎는 사람, 장맛비에 파인 곳을 메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음료수와 간식을 나르는 아이들까지 모두가 조상을 숭배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한편 아낙네들은 집안에서 음식을 만들며 점심준비를 하는 모습은 잔칫집 분위기이다. 우리집안은 6년 전부터 큰집부터 당번을 정해 벌초전날부터 당일까지 음식을 준비하여 벌초행사를 주관한다. 전날저녁에 모이는 것은 일가친척들 간에 친목을 도모하자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어른에서 아이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그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이 피어난다. 서먹서먹했던 친척들이 음식을 나누며 어울리다보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라는 어린아이들이 친척을 알게 되고 촌수도 일러주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집안의 행사나 명절 때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조상으로부터 이어지는 뿌리를 찾아 자신들의 위치를 인지하게 된다. 부모가 할아버지에게 효를 실천하면 자녀들에게 별도로 가르치지 않아도 은연중에 효와 예절교육이 이루어지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일가친척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공부를 열심히 하여 집안의 명예를 높이려는 마음과 각오도 갖게 되는 것이다.
잔치음식처럼 푸짐하게 마련한 점심을 먹고 나면 모두 모여앉아 회의를 시작한다. 8촌까지 모여 앉으면 40여명이 넘는다. 지난해 3년마다 다녀오는 경주 선산성묘행사의 결산도하고 회비수납과 내년도 계획도 협의한다. 올봄에 결혼을 한 조카가 정회원이 되어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고 하니 박수가 터져 나온다. 지난해부터 저녁모임을 즐겁게 하기위해 고기파티를 벌여준 4촌 동생을 소개하였더니 더 큰 박수가 터져 나온다. 결혼준비를 하는 아이들도 있고 취업준비를 하는 아이들에게 힘내라고 박수로 격려도 해주었다.
뒤편 에 앉아서 회의모습을 바라보고 계시던 어르신도 이제 다섯 분만 살아계신다. 올봄에 대수술을 하고 건강을 회복하신 당숙어른에게 더욱 건강하시라고 박수를 보내드리자 밝은 미소를 지으시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볼 때 자녀들의 효 교육은 저절로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쩔 수 없이 남에게 벌초를 맡기는 집안도 있을 것이고 벌초가 힘들다고 납골당으로 모시는 집안도 있지만 1년에 한번 자손들이 모여 멀어져가는 혈육의 정을 느끼며 친목을 도모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부모님의 은혜를 깨우쳐주는 계기로 삼는 좋은 기회가 되는 벌초행사는 더욱 발전 시켜나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