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땐 왜 그랬을까? 학급당 학생수 5,60명에 개인별 주당 수업시간이 보통 스물 일곱 여덟 시간을 넘기기 일쑤여서 하루 평균 5시간 이상 수업하느라 쉴 틈조차 없는데도 옆자리 동료가 몸이 아파 못 나오거나, 부득이한 출장으로 빈자리가 생기면 그 수업 서로 자기가 들어가겠다고 나서던 때가 있었으니…. 도대체 뭐가 좋아서 제 몸 피곤함도 잊고서 제 수업도 버거운데 남의 수업까지 하려 했을까? 아마 모두 미쳤었나 보다.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어서 미치고, 아이들이 사랑스러워서 미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자기 반 아이들 일로 급한 전화벨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가고, 결석이 잦은 아이가 하나라도 있을라치면 수업을 마치자마자 버스도 다니지 않는 외진 동네, 흙먼지 뒤집어쓰면서도 몇 십리 길 멀다 않고 걸어가서 아이를 만나 토닥토닥 등이라도 두드려 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선생 노릇 다 못한 것 같아 늘 마음 한쪽이 무겁기만 했던 그 시절.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그런 고생쯤이야 모른 척 했어도 월급은 나왔을 것이고, 세상은 빙글빙글 잘 돌아갔을 터인데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아이들에, 가르치는 일에 몸과 마음 모두를 바치게 만들었을까?
상전벽해라 했던가. 그 옛날 시골 여인숙 수준의 학교시설은 요즘엔 가히 호텔수준으로 바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고 교육환경이 좋아진 것만큼이나 선생님들의 근무여건도 놀랄 만큼 개선되었다. 개인별 주당 수업은 평균 이십 시간 이하로 줄어졌으며, 보충수업이니 특기적성 교육을 지도하면 그에 따른 수당을 따로 받는다. 선생님들 고생한다며 학생 수나 수업 시간은 해마다 조금씩 줄여주고 돈은 돈대로 준다는데 나쁘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이니, 이쯤 되면 교사도 해볼만 한 직업이 된 셈이다.
문제는 요즘 교단에서 선생님들이 누리는 시간적 여유와 물질적 풍요가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옛날에 비해 개인적 삶의 편의와 쾌락지수를 한 단계 끌어올렸는지는 모르겠으나, 함께 어울려 사는 존재로서의 사회적, 도덕적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뜨렸다는데 있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했듯이, 편해질수록 더 편한 길만 찾게 되는 안일한 타성이 만연되다 보니 요즘엔 조금만 불편하고 귀찮은 일 주어지면 서로 ‘안 하겠다’ ‘못 하겠다’ 아우성이고, 모든 것을 금전적 보상과 연결 지으려다 보니 정을 우선하던 동료 간의 관계나 인화를 중시하던 조직의 풍토도 예전 같지만 않은 것이다. 몸이 아파 결근한 선생님의 결보강을 메우기 위해 수업계 선생님이 날마다 이 사람 저 사람쫓아다니며 '한 시간만 도와달라'며 사정해야 하고 , 담임 맡은 사람이 방학 때 자격연수라도 받으러 갈라치면 학급관리를 누구에게 맡겨야할지 난감해 하고......
진정 소망하건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학교라는 직장이 좀더 아름다운 곳, 따뜻한 곳, 머물고 싶은 곳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세상 모든 직장인들이 선생님들을 부러워하고 교직을 동경하는 풍조가 생겨나면 얼마나 좋을까. 직장 동료 간에 '사랑'의 뜨거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理解)'의 온기들이 조금씩이라도 느껴지면 얼마나 좋을까.
빠르게 변하는 시류를 거부한 채 과거로 돌아가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사람을 키우고 기르는, 그래서 어쩌면 다른 여느 직장보다는 그래도 인간적인 일터여야 할 교단이 지나치게 자기만을 생각하고, 편함만을 좇아 사는 나머지, 각박한 세태의 또 다른 축소판으로 남으려 한다면 과연 무엇으로 우리 교육의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그만, 흘러간 추억 속의 그림 몇 장을 이리 궁상스럽게 더듬어 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