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고장이요, 전적지의 산실로 잘 알려진 강화도에 오면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99칸 별장식 고건물을 만나게 된다. 고려 시대 몽고의 침입을 연상케 해주는 그 흔적이 바로 이 고건물이다. 비록 1920년대 지었다고는 하나 몽고난 때 왕족과 귀족들이 이곳에 피난을 와서까지 신라의 포석정을 연상하게 해 주는 귀족들의 여유와 사치를 짐작하게 해 준다. 이 저택이 지금은 사유지로 돼 있으나 많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문에 ‘출입금지’라는 방을 붙여 놓은 상태다. 하지만 단체로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는 사전에 연락을 하면 내부를 볼 수 있다.
이 저택의 안에 들어가면 최근에 화재가 난 까닭에 중문을 거치기 전에 약간의 방들이 소실되었다. 그러나 빨리 불길을 잡은 까닭에 크게 원형을 손실할 만큼 없어지지는 않았다. 향나무로 지어서인지 마치 최근에 지은 집처럼 원목이 깨끗하게 보존되어 당시의 이 집안의 재력을 짐작하게 해 준다. 이집 주인의 말에 의하면 이 집을 소유한 당시의 부는 일 년에 팔십만 석이나 수확을 할 정도라고 하니 이 집에 붙어 사는 소작인이나 마름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금에 비하면 그렇게 큰 집은 아니라고는 하나 앞뜰에 마련된 연못이며 큰 정자나무며 하는 것들이 궁궐의 모습을 연상하게 할 정도다. 잘 가꾸어 옛 궁궐의 터전을 이루는 복원공사가 이루어진다면 더 좋은 관광 명소가 될 것 같은데 이집 주인은 돈도 받는 것을 싫어하고 오로지 자기 소유로서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 소유한 집 주인이라 이 집에 얽힌 여러 이야기도 다 조사하여 그 내력에 관한 이야기를 책 10권 정도만 발간했다고 한다. 자기 집안에서만 보관하기 위한 것이라 남에게는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 집을 둘러보고 난 뒤 강화도는 야릇한 두 가지의 상반된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선원사라는 곳에서 불심으로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온갖 피와 땀을 짜내는 고열이 있었건만 한쪽에서는 이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사치와 방탕으로 피로연을 계속하였으니 민중은 민중대로 귀족들은 귀족대로 노는 따로국밥에 지나지 않았던 고려의 이중적인 면을 연상해 보면 인간사 세상사가 다 이러한가 싶을 정도다. 교육계도 마치가지로 대학은 남아도는데 한쪽에서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피와 땀을 짜내는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팔만대장경과 99칸 집을 연상해 보면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