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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자유를 가르쳐준 괴짜

3년 내내 괴짜라는 별칭을 달고 살았던 주홍이가 찾아왔다. 터미널에서부터 학교까지 걸어오느라 힘들었는지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졸업식날 본 후, 꼭 8개월 만이다. 오동통했던 몸매는 독수리처럼 날렵해졌고 밤송이처럼 까칠했던 머리는 사자 갈기처럼 휘날렸다. 짙은 청색 면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것이 꼭 영화 ‘폴링 다운’에서 딸을 만나러 가는 마이클 더글러스 같았다.

“선생님, 여전하시죠.”
“나야 늘 그렇지. 그래 너는 좀 어떻니.”
“부모님 일 도와드리며 틈나는 대로 글쓰고 사진 촬영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어요.”

예의 그 서글서글한 눈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 좋은 웃음은 전과 다름없었다. 녀석과의 인연은 피천득님의 수필 제목처럼 각별하다. 신입생 때 만나서 3년간 국어를 가르치고 두 번이나 담임을 맡았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얌전해 보이던 녀석이 반골(?) 기질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학년 여름방학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녀석은 방학만큼은 혼자서 보낼 테니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에서 빼달라고 떼를 썼다. 말이 좋아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지 사실상 반강제적이었던 상황에 비춰보면 녀석의 주장은 일종의 항명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방학을 보내고 다시 학기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녀석의 수업 태도가 문제였다. 거의 모든 수업 시간에 소설을 읽느라 담당 선생님들로부터 꾸중을 듣는 일이 늘어났다. 다른 친구들은 대학 진학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공부했지만 녀석은 애초부터 점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고3이 돼서도 녀석의 일탈(?)은 계속되었다. 전보다 소설 읽는 시간이 더 늘어났고 아예 한 술 더 떠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 누가 뭐래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심사였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하지 않겠느냐”는 담임의 설득은 매번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전업작가가 되겠다는 열정에 엄청난 독서력까지 더해지자 녀석의 문장력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어쩌면 그 나이에 그 정도의 소설을 쓴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부실한 학생부를 제쳐두고 글 솜씨만으로 녀석을 뽑아줄 대학은 없었다. 결국 녀석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선생님, 올 겨울에 저 미국 갈 것 같아요.”
“아니 뜬금없이 웬 미국이냐?”
“그게 아니라, 평소 관심 있었던 글 쓰기와 사진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서요.”

그랬었다. 녀석은 배움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또 다른 세계를 묻어뒀던 것이다. 수업종이 울려 주홍이와의 짧은 만남도 접어야 했다. 작별 인사를 나누며 서둘러 교실로 발길을 옮겼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자 책상위에 조그만 액자가 놓여 있었다. 녀석이 촬영한 사진이었다. 액자 뒷면을 보니 간단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선생님, 학교 다닐 때 속 많이 썩여드려서 죄송해요. 그렇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그것이 진정한 자유이자 저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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