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임용명부에 등재되고도 13년 동안 발령을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됐다. 교원임용명부등재 미발령자 완전발령추진위원회(대표 정혜숙·이하 미발추) 회원들은 오랜 시간을 끌어온 미발령 문제를 이번에는 꼭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당초 교육부에서는 특별법 제정안의 국회 상정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발령 인원이 너무 많아 임용고사 준비생의 반발이 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난 8월 30일 교육부총리와의 면담을 통해 미발추 관계자들은 '문제 해결을 촉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부총리도 당시 교원 적체가 없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 우리와 뜻을 같이 했습니다. 부총리는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 문제는 꼭 풀려야 한다'면서 현행법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특별법을 제정해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 동안 꽉 막혔던 것이 반쯤은 풀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미발령 문제는 지난 89년 당시 문교부가 '교원양성·임용제도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안'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63년 이후 시행돼온 '국·공립 교원양성기관 졸업생 우선임용제도'가 폐지되고 교원자격증을 취득한 모든 이를 대상으로 선발시험이 치러지게 된 것이다.
문교부는 당초 94년부터 우선임용제를 폐지하려 했으나 헌법재판소가 90년 10월 이 조항에 대해 "출신학교의 설립주체나 학과에 따라 차별하는 결과가 돼 직업선택의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며 위헌판결을 내림으로써 폐지 시기가 앞당겨졌다.
이 과정의 최대 피해자는 당시 발령이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80∼86학번의 국·공립 사대 졸업생들이었다. 이들은 발령만 나지 않았을 뿐이지 엄연히 명단에 올라있는 '임용후보자'였기 때문이다.
91년부터 임용고사가 실시됐지만 법의 소급적용으로 인한 이들의 권리찾기는 법정 투쟁으로 이어졌다. 95년까지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등을 계속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교총에서도 교육부 교섭사항에 특별법 제정을 포함시키는 등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문제 해결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이미향 클럽장은 "처음 시작할 때를 생각하면 여기까지 온 것도 꿈만 같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50명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50명이 10만원씩 모으면 500만원, 그 돈으로 변호사 구해서 시작하면 되겠다 싶었지요."
이선순 홍보부장도 "교총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도와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가장 답답했다"고 말했다.
"정치권, 교육계, 심지어 학부모들까지도 우리의 입장이 억울하다는 점에는 동감하면서도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해 해결할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남에서 서울로 올라온지 13년째를 맞는 문영미 교섭부장은 "잘못된 행정 처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다"면서 "특별법 제정을 통해 미발령자들을 교단에 서게 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다른 길을 찾은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교단에 서겠다는 꿈 하나만 키워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기간제 교사나 학원강사 등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발추 소속 회원은 1000여명. 이들은 현재 국회와 민주·한나라당사, 교육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지방 회원 3,4명씩이 서울로 올라와 시위에 참가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문 부장은 "일간지에 광고를 내고 동창회 명부를 통해 개별 연락한 이후 최근 회원이 많이 늘었다"면서 "특별법을 통해 1500명 정도가 잃어버린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부장은 "지금까지 어렵게 임용고시를 준비해온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생각은 전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임용고시는 이미 10년 동안 정착돼 왔습니다. 우리는 교육부에서 선발하고자 한 인원 외에 별도로 미발령자들을 채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별 증원이 이뤄진다면 교육여건 개선사업 이후 낮아진 법정 교원 확보율을 높이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