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선택중심'을 골자로 한 제7차 교육과정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선택중심 교육과정의 시행을 앞두고 전국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현 1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희망과목 조사를 거쳐 교과서 신청을 마친 상태다. 시행 전부터 일선학교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던 선택중심
교육과정에 대해 학교현장에서 제시하는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들어봤다.
선택중심 교육과정은 도입 단계에서부터 '취지는 좋으나 학교 여건과 맞지 않다'는 우려를 여러 차례 불러왔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들으며 자신의 진로를 선택해나가는 과정은 좋으나 각 고교에서 안아야 하는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충남 성환고의 전웅주 교사는 "선택중심 교육과정 때문에 학교는 매우 혼란스럽다"며 "학생들을 균등하게 여러 과목으로 적절히 나눠야 하는 데다 학생들이 한번 정한 후에 자주 의견을 바꾸기도 해 교사들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일부 과목, 특히 제2외국어에 대한 선택 편중은 학교현장의 커다란 고민거리다. 전 교사는 "일어와 중국어에 학생들이 많이 몰려 학생들의 의견을 100%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과학 교과나 음악, 미술 등에서도 선택의 편중 현상이 나타난다"고 전했다. 전 교사는 "이동수업으로 담임교사가 학생들의 출석을 확인하기도 어렵다"면서 "수업교사가 수업시간에 컴퓨터에 출석상황을 입력하고 평가도 수업을 하는 교사가 맡아서 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01년 현대고, 대진여고, 서울공고 등 5개 고교를 '선택중심교육과정 편성·운영 시범학교'로 지정한 바 있다. 대진여고의 임관철 교무부장은 "학교여건에 따라 이동수업이 쉽지 않을 수도 있어 학생들의 이동을 최소화하는 것이 학교마다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부장은 교과서에 대해서도 "10원 단위로 액수가 다 다른데 그것들을 일일이 계산하자면 선생님들이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 부장은 또 "일선 고교의 상황과 대학교 입시가 맞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서울대 입시안을 둘러싼 혼선에서도 나타났듯이 대학교의 요구사항과 고교 교육과정이 맞지 않을 경우, 심각한 파장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학생들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를 살려 대체교과 등을 유동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안양외고의 신현호 교사는 "지금까지 외고에서는 기술·가정 과목을 배우지 않았다"면서 "교사야 영입하면 되겠지만 학생들은 국민공통기본교과인 기술·가정보다는 컴퓨터 과목을 더 원한다"고 전했다.
신 교사는 "교육청에 컴퓨터 과목으로 대체 이수하면 안되겠냐고 문의했으나 절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면서 "폭넓은 대체교과 이수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교 과정의 총 이수단위가 12단위 늘어나면서 교사들의 수업부담도 커졌다. 충남 서령고의 김동수 교사는 "주당 수업시수가 늘어 전국의 모든 학교가 교사 수급에 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주5일제 수업이 실시되면 부담이 더 커지므로 이에 대한 교육부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수업부담 이외에도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학생 안내와 진로지도 등 과거에 비해 교사들의 업무는 크게 늘어났다. 지금까지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학과와 진로를 결정하는 경향이 높았지만 이제부터는 고교에서 과목을 선택할 때부터 학생들이 향후 진로를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경복고 이원희 교무부장은 "이제는 학생들이 고2때부터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만들어가게 됐다"면서 "학생들이 충분한 탐색을 하고 있다면 긍정적이지만 잘 알지 못한 채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진로지도에 대한 일선 학교와 교사들의 부담이 늘어난 만큼 학생들이 체계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도 점차 확대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는 학생이 많은 실업계고는 일반계와는 다소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서울공고의 박태원 교무부장은 "입학 때부터 과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미 학생들이 선택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과별로 고정된 시간표가 대부분이어서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도 "실업계고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밝혔다. 7차 교육과정에서는 고1에 해당하는 10학년에서 국민공통기본과정을 끝내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어 1학년 때부터 균형 있게 전공과목을 들을 필요가 있는 실업고와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 마종락 교사는 "특히 현장실습이 문제"라면서 "주로 현장실습을 나가는 3학년 2학기에는 보통교과 편성이 힘들다"고 말했다. 마 교사는 "7차 교육과정에서는 '실업계고에서는 전문교과를 현장실습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규정 하나로만 명시돼 있다"며 "이에 대한 지침이 보다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