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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내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오늘 아침 TV 뉴스에서 외로운 슬픔을 보았습니다. 조용한 울음을 보았습니다. 농촌의 한 할아버지께서 소가 브루셀라에 감염되어 도살 처분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하는 소리없는 조용한 울음을 보았습니다. 병으로 도살 처분된 소가 이마에 주름진 한 농부를 울게 만든 것입니다. 눈가에 눈방울이 맺히는 슬픔을 서글프게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누가 그분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겠습니까?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견고한 심지로 다시 일어섰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저는 어제 야자시간에 제 자리에 앉아 조용한 교무실에서 시 한 편을 읽고 음미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야 지루한 야자시간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권태로 말미암아 위축된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흔들리는 나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그는 몰랐다.//”

신경림 시인의 ‘갈대’를 읽고서 저 자신이 조용히 울고 있는 갈대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 자신이 흔들리는 갈대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면으로는 드러나는 슬픔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슬픔 때문입니다. 외면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슬픔 때문이 아니라 드러나는 슬픔 때문입니다.
내면으로는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슬퍼하며 웁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슬퍼하며 웁니다. 자신의 더러움 때문에 슬퍼하며 웁니다. 자신의 무능 때문에 슬퍼하며 웁니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그러합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러합니다. 자신의 편견 때문에 그러합니다. 자신의 고집 때문에 그러합니다. 자신의 게으름 때문에 그러합니다. 자신의 불성실 때문에 그러합니다. 자신의 모순 때문에 그러합니다. 자신의 망가짐 때문에 그러합니다.

외면으로는 못마땅한 학교현실 때문에 슬퍼하며 웁니다. 인문계 고등학교 때문에 슬퍼하며 웁니다. 야자 때문에 그러합니다. 자신의 시간을 온통 빼앗겨 그러합니다. 아무 힘이 없는 교감이라는 직책 때문에 그러합니다. 선생님들에게 힘이 되지 못해 그러합니다. 선생님들에게 용기를 주지 못해 그러합니다.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그러합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저 자신을 보면서 그러합니다. 학생 때문에 그러합니다. 밤낮 공부 때문에 고통 받는 학생들 때문에 그러합니다. 조금도 변화가 보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학생들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와 같이 산다는 것이 온갖 슬픔 때문에 속으로 이렇게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우리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갖가지 이유 때문에 슬퍼하고 나름대로 조용한 울음 속에 살고 있을 것입니다. 조용한 슬픔을 머금고 살고 있을 것입니다. 조용한 슬픔을 가슴에 앉고 눈물 없는 울음 속에 흔들리고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학교 때문에 슬퍼하며 울 것입니다. 학교에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슬퍼하며 조용히 울고 있을 것입니다. 함께 하는 선생님 때문에 슬퍼하며 울 것입니다. 협조가 되지 않아 슬퍼하며 울 것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학생들 때문에 슬퍼하고 조용히 울고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고 속상하게 하니 슬퍼하고 울고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흔들리고 있을 것입니다. 갈등을 일으키고 있을 것입니다. 교직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도 역시 학교 때문에 슬퍼할 것입니다. 자기들의 요구사항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슬퍼할 것입니다. 선생님 때문에 슬퍼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 슬퍼할 것입니다. 친구들 때문에 슬퍼할 것입니다. 자신 때문에 속으로 울고 있을 것입니다. 조용히 울고 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 때문에 슬퍼하고 울고 있을 것입니다. 흔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생각하며, 선생님을 생각하며, 학생들을 생각하며 슬퍼하며 울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떠나려 하고 선생님과 멀어지려 하고 학생들을 관심 밖으로 밀어내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가슴이 내려앉겠습니까?얼마나 갈등을 일으키며 흔들리겠습니까?

그러나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슬퍼할 수만 없습니다. 낙심할 수만 없습니다. 좌절만 할 수도 없습니다. 한탄만 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서야 합니다. 다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나는 흔들리는 갈대다’ 하면서 슬퍼하고 울고 흔들리면 안 됩니다. ‘나는 갈대처럼 연약한 존재야 어쩔 수 없어’ 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을 내던져도 안 됩니다.

조용한 슬픔 속에 꽃을 피워야 합니다. 조용한 울음 속에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꿔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자신의 성품을 바꿔야 합니다.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자신의 행동을 바꿔야 합니다. 조용한 슬픔을 조용한 기쁨으로 바꿔야 합니다. 조용한 울음을 조용한 웃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약함을 강함으로 바꿔야 합니다. 무능을 능력으로 바꿔야 합니다. 불성실을 성실로 바꿔야 합니다.

나 자신이 슬퍼하고 조용하게 울고 있는 것은 학교 때문이 아니고 나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슬퍼하고 조용하게 울고 있는 것은 선생님 때문이 아니고 나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슬퍼하고 조용하게 울고 있는 것은 학생 때문이 아니고 나 때문입니다. 모든 게 다 나 때문입니다. 모든 게 나 때문에 울음이 일어납니다. 모든 게 다 나 때문에 슬픔이 일어납니다. 나 자신이 바뀌면 조용한 슬픔이 기쁨이 됩니다. 나 자신이 바뀌면 조용한 울음이 조용한 웃음이 됩니다.

내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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