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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기타를 배우고 싶어요"

주말 저녁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컴퓨터를 끼고 살아야 한다. 도교육청에서 논술 첨삭위원으로 위촉받아 매주 두세 명의 아이들 글을 다듬어줘야 한다. 늘 그렇듯 컴퓨터를 켜고 메일부터 확인했다. 첨삭을 해준 학생들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을 활용하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확인창을 누르자 벌써 서너 개의 편지가 쌓여 있었다. 굴비처럼 엮인 발신인 명단 가운데서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영호예요. 매일 뵙지만 막상 편지를 쓰려니 쑥스럽네요. 그렇지만 꼭 상의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우리 반의 꽃미남 영호의 사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실 이런 고민을 해서는 안 되는데…. 선생님, 저 기타 배우고 싶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혼날 것 같고….” 담임 경력이 십수 년쯤 되면 학생들을 처음 만날 때 직감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아이를 알 수 있다. 대개 그런 아이는 반항적 기질로 똘똘 뭉친 경우가 많다. 영호가 그런 녀석이었다. 야생마같던 영호를 순한 양으로 길들이는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와~우리 영호 멋있는데. 이렇게 머리도 짧게 자르고 복장도 단정하고 더군다나 수업 태도까지 좋아졌으니 말이야.” 경험상, 아이에게 조그만 장점이라도 발견되면 즉시 칭찬을 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아이는 담임을 믿고 따르게 마련이다. 학교생활이 즐겁다던 영호에게 이런 고민이 있었다니 의외였다. 입학 당시보다 성적도 많이 올랐고 장차 ‘치과의사’가 되겠다며 담임 앞에서 당당하게 포부를 밝혔던 녀석이다.

“막상 배우자니 공부에 소홀할 것 같고, 그렇지만 기타는 치고 싶고…. 선생님,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것이 있잖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고민입니다. 결국 공부 때문에 안 되겠죠.” 영호의 편지를 읽고 한 동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과의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에 기타로 인해 공부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을 듯싶었다. 그렇더라도 아이에게 실망을 안겨 주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영호에게 그런 고민이 있었구나. 일단 축하해, 기타를 배우겠다니 말이야. 선생님도 고등학교 때 기타를 배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거든. 비틀스처럼 훌륭한 그룹도 만들고 싶었는데. 영호야, 배우기는 하되 이렇게 하면 어떨까. 주중에는 공부를 하고 주말에만 기타를 배우면. 물론 방학 때는 더 많이 배울 수 있겠지.”

내 딴에는 일종의 타협안이었다. 영호가 공부도 하면서 기타를 배울 수 있도록.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호의 마음속에 ‘비틀스’를 꿈꾸는 마음이 자라고 있다면 그 싹을 채 피워도 보기 전에 잘라서는 안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비틀스 멤버인 존레논이나 폴매카트니도 청소년기부터 기타를 배우며 음악적 재능을 발견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아마도 담임의 답장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는가 보다. 자정을 넘겨서야 편지를 보냈는데, 곧바로 답장이 왔으니. 우연의 일치랄까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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