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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부끄러운 자화상 한번 돌아봅시다

십여 년 전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선배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특별히 무슨 용건이 있냐고 묻었다.

"전 교감, 나 내년에 학교를 옮겨야 하는데 자네 학교에 근속만기로 이동해 가는 사람이 있어 자리가 하나가 빈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선배님께서 저희 학교에 오신다면 대환영이지요."
"근데~. 나 부탁이 하나 있어. 이젠 나이를 먹다 보니 힘든 일은 못하겠더라구. 담임이나 부장 역할 맡지 않고 수업이나 조금 할 수 있게 배려해 주게."

기분이 좋다 말고 금세 떨떠름해지기 시작했다. 선배님이니까 가급적이면 개인적 형편도 고려해주고 나이도 드신 만큼 학교 이동에 따른 불편함 없도록 도와주어야겠지만 아직 인사이동되기도 전에 젊은 후배 교감한테 부탁한다는 것이 겨우 이 정도란 말인가.

"선배님. 그건 좀....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로 담임을 안하려는 통에 학년초만 되면 골머리를 앓는 것이 요즘 학교 실정인데 새로 오신 분들마저 어려운 일은 안 할 속셈으로 오시면 학교로서 정말 괴롭습니다."
"아, 전 교감. 나는 그냥 서로 아는 처지고 그래서 부탁한 것인데....안 된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죄송합니다."

어색하게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하니, '아니 내가 왜 죄송해야하지?'하는 마음이 들면서 답답한 교육현실에 화가 불쑥 치밀기 시작한다 .

도대체 학교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세상이 변하고 그에 따라 직업관도 변했으니 굳이 천직의식을 들먹이고 사명감을 기대하긴 무리라 할지라도 교육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식과 책임의식마저 실종되어버린 우리 교단.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 학생은 있는데 담임을 맡고자 하는 선생님이 없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되는가. 학교도 하나의 조직인데 부서별 업무를 총괄할 부장 역할 해 줄 사람이 없어서 교장 교감이 선생님들 꽁무니 따라다니며 사정하고 다녀야 한다면 그것이 어찌 제대로 된 학교이고, 그런 학교에서 무슨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겠는가.

'평안감사도 나 하기 싫으면 그만'이니까, 학교 일도 내가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정말 교육자의 기본태도마저 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교단에 설 수 있었는지, 그러고도 버젓이 교사라고 국가의 봉록을 받아먹고 사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사범대학 졸업하고 교사 자격증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십대 일 임용고사 경쟁률에 수 차례 낙방의 고배를 마시면서, 오늘일까 내일일까 교단에 설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어려운 일을 다하겠다는 젊은 인재들 수천 수만명이 교문밖에 즐비하게 줄지어 서있는데, 나는 이제 교사되었으니, 철밥통 찼으니 '누가 감히 나에게 나가라고 할 것이며, 누가 감히 나에게 싫은 일을 시킨단 말인가'하면서 무사안일에 젖어 사는 선생님들 볼라치면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다." " 이런 나라가 안 망하는 것 보면 참 용하다."는 자조의 탄식을 삼킬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이다.

정말 이래서는 안된다. 우리가 사람의 얼굴을 한,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아이들 무서운 줄 알아야 하고, 직업을 부여한 국가에 그저 감사하며 자기 책무를 다해야한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어떤 선생님이 실력있고 어떤 선생님 공부 안한다는 것, 어떤 선생님은 진실하고 어떤 선생님은 거짓된다는 것 한눈에 보고 안다. 차마 말을 아니해서 그렇지, 왜 모르겠는가. 저들도 다 사람보는 눈이 있고 판단력이 있는데. 무책임하고 요령이나 피우면서 철밥통 차고 앉은 선생님 밑에서 제 자식이 공부한다고 생각해 보라.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학년말 시험 끝나고 며칠 있으면 겨울방학이다. 엄정한 성찰의 거울 앞에 스스로를 세워놓고, 내가 얼마나 스승다운 모습으로 바른 사도의 길을 걸어왔는지 돌아다 볼 때이다. 그런 자기반성의 토대 위에서 거듭남의 노력을 쏟아부을 때 잃어버린 교권, 땅에 떨어진 신뢰 회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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