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엔 부모가 이혼하고 편부나 편모 밑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다. 때론 양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홀로 살아가는 아이도 있다. 겉으로 보기엔 밝고 예의도 있어 속에 아픔을 지니고 있다는 걸 모른다. 그러다 우연히 이야기를 하다보면 밝은 미소 속에 커다란 상처들을 조각조각 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부모의 헤어짐은 단지 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이별의 아픔은 당사자보다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그 아픔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깊은 상실감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면서 그 슬픔에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꿋꿋이 이겨낸다. 스에요시 아키코의 소설 <노란 코끼리>에 나오는 열한 살의 소년 ‘요군’처럼 말이다.
어느 날 사랑하는 아빠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 나가버리고, 이에 충격을 받은 엄마가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남은 아이들은 어떤 심정일까? 혹 세상에 엄마 아빠 없이 홀로 남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과 초초함 속에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돌아온다. 이 때 아이들은 돌아온 엄마를 바라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요군의 엄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먹고 살기 위해 프리랜서로 여러 잡지사에 글을 쓴다. 그런데 엄마는 늘 덜렁거린다. 덜렁거릴 뿐 아니라 건망증도 왕 심하다. 그런 엄마를 아들은 한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때론 다투기도 하고 충고까지 한다. 아빠가 없는 집에서 스스로 조숙한 어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아이들을 무척 사랑한다. 늘 덜렁거리지만 낙천적인 성격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자신의 아픔을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아이들의 작은 배려에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을 한다.
“차 잘 마셨다. 착한 애들을 두어 엄마는 너무너무 행복하구나. 차를 마시면서 엄마는 울었단다.”
회사에서 일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위해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딸 ‘나나’가 끓여놓은 차를 마시고 쓴 엄마의 메모 내용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작은 중고차를 사온다. 운전면허도 따기 전에 말이다. 그 차는 노란 아기 코끼리를 닮았다. 그래서 그 차를 ‘노란 아기 코끼리’라고 부른다. 세상 밖으로 나가길 두려워했던 엄마는 서툰 운전 솜씨에도 불구하고 차를 끌고 나간다. 나갈 때마다 노란 아기 코끼리는 깨지고 견인당하고 수난을 당한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들은 한편으론 안쓰러운 듯, 다른 한편으론 한심스러운 듯 바라본다. 그러나 요군은 자동차가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어린아이가 물가에 가는 것처럼 불안하게 바라볼 뿐이다. 허나 엄마에게 자동차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였고, 이혼 후 세상에 당당하게 나갈 수 있도록 자신감을 가져다 준 존재란 걸 나중에 엄마의 고백을 통해서 알게 된다.
엄마의 좌충우돌이 계속될 때쯤 아빠가 아들의 생일 날 자전거를 사가지고 집으로 온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 엄마는 끝내 말다툼을 하게 되고,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아빠는 비가 오는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런 아빠를 바라보며 요군은 다시는 아빠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비를 맞고 걸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요군은 동생 나나에게 우산을 갖다 주라 하지만 나나는 우산을 도로 가져온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로 아스팔트의 물을 튕기며 달려가는 나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왜 내가 직접 아빠에게 다려가 우산을 건네주지 못하는 걸까?’ 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이 순간 아빠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나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엄마도 아빠를 붙잡을 수는 없지만 혹시 나나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나가 발길을 돌려 우산을 든 채로 되돌아왔고, 아빠는 비에 젖은 채 찻길로 향했다. 내가 있는 곳까지 돌아온 나나는 우산을 내밀며 빨개진 눈으로 말했다.
“우산 빌려 가면 다시 돌려주러 와야 한다고 필요 없대.”
우리는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두 번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어쩐지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이 씁쓸해진 그날은 내 열한 번째 생일날이었다.”
아빠의 외면과 어린 자식의 쓸쓸함. 우산을 돌려주기 싫어 어린 딸아이의 우산도 거부한 아빠. 그런 아빠를 바라보는 어린 자식은 말없이 눈물을 삼킨 채 집으로 돌아온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소설 속의 모습만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지금도 많은 어른들이 여러 이유로 헤어지게 되고 남은 자식들은 말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슬픔을 삭이고 살아간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많은 아이들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장점은 단순히 이혼의 아픔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 아픔을 가지고 있는 가족들이 힘차게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에 있다. 그런 꿈의 모습은 아기 코끼리로 모습으로 드러난다. 바다를 향해서 힘차게 질주하는 노란 아기 코끼리는 엄마의 꿈과 희망을 의미한다. 비록 그 바다를 향해 가다 망가지고 부서지지만 세상 밖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희망만은 부서지지 않음을 엄마의 말을 통해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엄마는 노란 아기 코끼리를 타고 있을 때면 늘 기분이 좋았단다. 엄마 노릇도 잘 못하고 아내로서도 부족했지만, 복잡한 도로에서 다른 차량의 물결에 섞여 함께 달리다 보면, ‘어때, 나도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잘하잖아’ 하는 기분이 들었거든. 엄마가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던 건 모두 이 노란 아기 코끼리 덕분이야.”
그러면서 엄마는 아이들에게 가슴을 펴고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엄마의 말을 들으며 아이들도 희망찬 태양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느낀다.
<노란 코끼리>는 한 아이의 시선을 통해 이혼 가정의 아픔과 남겨진 아이들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 아픔이나 슬픔이 우울하거나 회색빛으로 드러나지 않고 웃음 속에 조금은 경쾌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건 톡톡 튀는 언어 구사에 있다 하겠다. 또한 삶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과 마음이 아픔을 아픔이 아닌 희망으로 바라보았기에 무겁지 않게 표현했으리라 본다. 그러면서도 자라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혼이 어떤 상실감을 가져다주는 가를 한 아이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