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4 (목)

  • 맑음동두천 19.2℃
  • 맑음강릉 24.6℃
  • 맑음서울 19.2℃
  • 구름많음대전 18.7℃
  • 구름많음대구 26.7℃
  • 구름많음울산 22.4℃
  • 구름조금광주 20.7℃
  • 구름조금부산 18.1℃
  • 구름많음고창 16.3℃
  • 맑음제주 19.2℃
  • 맑음강화 16.1℃
  • 구름많음보은 20.0℃
  • 구름많음금산 19.5℃
  • 구름많음강진군 20.9℃
  • 구름조금경주시 27.0℃
  • 구름조금거제 18.8℃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단일기

때밀이 아줌마의 부재에 헛헛해하며


2007년 돼지해를 맞아 동네 사우나부터 먼저 찾았다. 지난 해의 묵은 때를 박박 벗겨내면 새해에는 뭐든지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늘 해오던 대로 때밀이 아줌마에게 몸을 맡겼다. 아직도 젊어 보이는 사람이 웬 시건방이냐고 핀잔을 듣는대도 할 수 없다. 때밀이만큼은 내가 누리는 유일한 호사이기에. 이 꼴을 엄마가 본다면 당장 때밀이아줌마 손에 쥐어질 돈부터 빼앗으리라.

“내가 밀어줄 테니까 그 돈 나한테나 내놔!”

그럼 나는 빼앗기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엄마는 전문가가 아니잖아. 때밀이 아줌마처럼 시원하게 해줄 수 있어?”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의 반응도 엄마와 똑같기는 마찬가지다.

“때미는 데 돈 내버리는 거 참 아깝더라.”

그러면서도 그네들은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돈, 달마다 미장원에 가서 머리 손질하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옷 사는 돈, 퍼머하는 돈은 아까워도 때 미는 돈은 아깝지 않다고 하는 나의 견해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여자들이 백이면 백 다 좋아하는 쇼핑은 내게 있어서만큼은 벼르고 별러야만 하는 드문 행사다. 쇼핑은 반나절이나 하루를 잡아먹는 시간귀신인 탓이다. 퍼머하는 일 또한 두세 시간은 잡아드시는 일이기에 웬만하면 그냥 손질 안 된 머리를 고수하고 산다. 발바닥이 퉁퉁 붓도록 싸돌아다녀야하는 쇼핑과 독한 퍼머약에 뜨거운 김까지 쏘여야하는 머리손질은 내게만큼은 고된 작업이다. 이런 고난의 시기를 견뎌내어야 럭셔리 군단에 끼일 터인데 상상만으로도 싫으니 요즘말로 뽀대나기는 애저녁에 틀린 모양이다.

하지만 때밀이는 다르다. 날 피곤하게 하는 쇼핑이나 퍼머와는 달리 때밀이 한방이면 온 몸이 날아갈듯 가뿐해진다. 일에 지쳐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을 때, 컴퓨터와 씨름하느라 삭신이 찌부둥할 때 이 때밀이만큼 좋은 것은 없다.

내가 자주 가는 동네사우나의 때밀이아줌마 솜씨는 두 말하면 잔소리다. 아프지 않게 때를 민 뒤에, 물 한번 시원하게 쫘악 뿌리고, 등 위에 올라서서 사정없이 짓밟는 맛사지를 받고나면 온 몸이 풀린다. 한마디로 굵직굵직 시원시원해서 좋다.

신기하게도 이네들은 몸의 상태를 보고 하는 일까지 알아맞춘다. 날 보고 뒷목과 어깨 쪽이 많이많이 뭉쳤으니 컴퓨터에 매달려서 일 좀 고만하라고 한다. 내가 어디에 살며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귀신같이 알아맞춘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더니 이네들은 몸의 뭉친 상태로 직업을 유추하는 모양이다.

예닐곱 되는 때밀이 아줌마들은 쉴 틈도 없이 손님을 받는다. 주말에는 한두시간을 기다려야 될 정도로 사람이 많이 밀린다. 그럼에도 이네들은 짜증한번 내지 않고 숙련된 솜씨로 때를 민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데도 온 몸의 힘이 쫘악 빠지는데 수많은 손님의 때를 밀고 팔이 남아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약함을 타고난 신체구조임에도 남자보다 더한 몫을 하는 괴력의 현장을 넋 놓고 바라볼 때가 많다.

하긴 이삿짐센터에서 짐을 나르는 사람들을 보면 덩치가 큰 사람보다는 왜소한 분들이 많다. 오랫동안 하다보면 요령이 생기게 되어있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네들은 자기 몸의 몇 배가 되는 짐짝을 가뿐하게 나른다. 책가방 크다고 공부 잘 하는 게 아니듯이 맷집이 좋다고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님을 왜소한 숙련공들을 보면서 깨닫는다.
때미는 일도 마찬가지로 몸집이 우람한 아줌마보다는 빼빼마르지만 성깔 있는 아줌마의 솜씨가 기가 막히게 좋다. 힘만 센 아줌마는 마사지를 받고나면 장작개비로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한 그런 불콰한 느낌이 들지만, 빼빼마른 아줌마는 어쩜 그렇게 뭉친 데를 잘 찾아내어 시원하게 두드려주던지 온몸의 근육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 손님에게나 반말을 해대는 싹퉁바가지이지만 야물면서도 부드러운 손놀림 앞에서는 그 성깔머리가 다 묻혀 들어간다. 싸가지가 바가지라도 때밀이만큼은 성깔머리에게 받고 싶으니 전문가에게는 모두들 고개를 숙이게 되어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때밀이 아줌마들이 먹고살던 터전이었던 동네 사우나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덩달아 손님인 나도 때밀이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목욕탕에 가야했지만 그 쪽의 때밀이 아줌마는 영 탐탁치가 않았다. 어릴 때 엄마가 우왁스럽게 잡아채어 살갗이 에이도록 아프게만 밀던 그런 초보 때밀이들 뿐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시원했던 그 성깔 있던 아줌마의 손길이 그리웠다.

숙련된 때밀이 아주머니의 부재에 헛헛해 하는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때를 벗겨내는 단순한 일에도 이런 전문기술이 필요하거늘 나는 아이들을 가르침에 있어 솜씨 좋은 아줌마만큼 제자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선생이던가? 내가 가르치는 교수법이 그리워서 마음을 헛헛해하는 제자들이 있기나 할까? 만약 초보 때밀이 엄마 같은 부류라면 어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르침에 있어서도 싹퉁바가지 때밀이 아줌마처럼 야무져야하겠다는 생각!
올 새해의 첫 시작은 숙련된 때밀이 아주머니의 부재로 인해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교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