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어느 수필을 읽는데 영화 '라디오 스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수필의 내용인즉슨 박중훈이가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불륜 커플들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그렇게나 불쌍해 보였다는 이야기였다.
이 영화를 처음 들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호기심을 끌만한 내용이었지만, 이 부분만 갖고는 선뜻 관람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자연히 다음 수순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영화의 줄거리와 네티즌들의 반응을 살펴보기로 했다.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총 59명이 평가했는데 10점 만점에 9.5점이었다. 공전의 히트작 '왕의 남자'가 평점 9.6점이었음을 볼 때 대단한 호평이었다. 다음으로 감독을 살펴보니 역시 왕의 남자를 제작한 이준익 감독이었다. 거기에다 한국 영화계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안성기와 박중훈이 공동 주연이었다.
'안성기'가 누구인가. 일단 크랭크인에 들어가면 철저할 정도로 배역과 일체가 되기 위해 대본을 300번이나 읽어서 소화한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지독한 성실맨이다. 박중훈 또한 '투캅스1'에서 안성기와 공동 주연을 맡아 당시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계의 거목이다.
일단 메가폰을 잡은 감독과 출연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그리 허접한 영화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영화를 좋아하셨던 선생님께서 들려주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말야, 제일 먼저 감독을 보고 그 다음 출연 배우를 본 다음 결정하면 속지는 않아."
그 뒤부터 리포터는 영화를 볼 때면 항상 선생님의 그 말씀을 떠올리곤 한다.
마침 리포터가 DVD 대여점에 들렸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사방에서 몰려들기 시작하는 저녁시간이었다. 사람들은 하루의 고된 일과를 끝내고 모두들 포근한 안식을 위해 바쁜 귀가를 서두르던 무렵 나 또한 얇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있는 '라디오 스타' 한 장을 짚어들고 가게문을 나섰다.
영화의 첫 장면은 주인공 최곤이라는 가수의 화려했던 과거가 정말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수많은 열혈팬을 거느린 최곤이 열광하는 팬들을 위해 무대 위에서 몸을 달리는 것으로 화려했던 시절은 순식간에 끝이 나고, 그 다음부터는 다시 몰락한 현실로 돌아와 미사리 불륜 카페에서 생존을 위해 기타를 치는 초라한 최곤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의 칼날 같은 자존심! 이렇듯 현실과 언밸런스한 자존심이 사사건건 사건을 만들어가며 영화는 시종일관 진행이 된다.
최곤이 잘나가던 시절의 매니저였던 박민수는 지금도 최곤을 변함 없이 보살펴준다. 최곤에게 있어 박민수는 손발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다. 박민수가 없으면 최곤은 혼자서는 담배 하나도 사서 피울 수 없는 생활무능력자이다.
"형 담배! 형 불!" 형만 부르면 뭐든 해결해주는 영원한 해결사인 박민수에게 최곤은 한없는 어리광을 부리며 살아간다. 매니저 박민수 또한 최곤을 과거에 가수왕까지 시켰다며 호기를 부리지만 그 역시 오갈 데 없는 신세이긴 마찬가지.
이러한 두 사람의 인간적인 의리와 변치 않는 우정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의 눈물샘과 웃음보를 동시에 자극한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는 이미 사라진 동화 같은 의리요 우정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두 사람은 최후의 수단으로 강원도 영월의 한 지방라디오에 DJ로 취직한다. 시골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는 최곤은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어 방송을 자기 마음대로 요리하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 어느 날 최곤은 커피배달을 온 다방 아가씨를 생방송 즉석 게스트로 출연시키는 기행을 연출한다. 천만다행으로 이것이 시청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마침내 최곤은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정말 오랜만에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따스한 영화를 본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끝없는 인내력과 훈훈한 인간애, 불굴의 정신, 사나이들의 의리와 우정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사랑과 우정까지도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이 시대에 우리들의 메마른 감성을 촉촉히 적시는 샘물 같은 영화였다.
지금 이 시간, 인생의 힘든 고비를 넘기느라 무기력증에 빠지신 분들이 있다면 꼭 이 영화를 보시라. 분명 새로운 힘과 용기와 삶에 대한 의욕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