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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연수원의 추억 (25)

연수원에서 어제, 오늘처럼 이른 봄기가 내리는 날이면 보통날보다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하루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는 아침 6시 체조 시간에 현관 앞마당에서 체조를 하고 나서 현관에 서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그러나 바다의 검은 물 너머에 보이는 작은 불빛 하나가 희망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대왕암도 그 자리에 외로이 지켜있으면서 그래도 나는 내 자리를 지키노라 하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준다.

그러면 생각나는 대로 읊조리게 된다. ‘봄비는 촉촉이 마당 적시고 둘러 선 소나무 눈을 가리네. /듬성듬성 사이로 눈-빛 주니 구름은 먹물 머금어 입으로 토해 내고 바다도 순식간에 먹물 되었네./ 자그마한 불빛 하나 희망을 싣고 먹물로 얼룩진 天海사이로 한 줄기 힘이 되어 비추고 있네./ 대왕암 발(廉)에 가리어 윤곽만 희미하나 제 모습 지닌 채 자리 지키네./머리 녈 구름 먹물 지우니 작은 불빛 하나 삼형제 되었네./‘

하루는 연수원 숙소에서 신석정의 시 ‘산수도(山水圖)’를 읽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날 아침 산책길이 이 시와 너무 흡사하여 여기에 옮겨 본다.

숲길같이 이끼 푸르고/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어....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산새 쉬고/ 흰 구름 한가히 하늘을 지난다./산까마귀 소리 골짝에 잦은데/ 등 너머 바람이 넘어 닥쳐 와....../굽어든 숲길을 돌아서/시냇물 여운 옥인 듯 맑아라./ 푸른 산 푸른 산이 천 년만 가리........./강물이 흘러 흘러 만 년만 가리....../산수는 오로지 한 폭의 그림이냐?/

그래서 그 날의 산책길을 산수도에 대입(代入)하여 옮겨보니 조금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아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울기공원의 숲길은 나뭇잎이 푸르고/ 나무 사이사이 하늘이 푸르디 푸르로다./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산새는 지저귀고/ 작은 새 상공을 유유히 난다./
산까마귀 소리 골짝에 잦은데/ 등 앞에 바람이 얼굴에 다가와 땀을 식힌다./

굽어든 숲길을 돌아서/ 바닷물 호수인 듯 잔잔하여라./
푸른 숲, 푸른 숲이 언제까지런가?/ 푸른 물, 푸른 물은 끝이 있으랴!/

산수는 오로지 한 폭의 그림이로구나!/

울기공원의 숲 속은 신록으로 가득 찼고 전날과 마찬가지로 한 점 구름 없이 맑고 깨끗하지만 햇볕은 안개에 가려 제빛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울고 있지만 유달리 산 까마귀의 소리가 크게 들린다.
대왕암에 이르러 바다를 보니 비단 물결같이 잔잔하며 햇살은 은은하게 바다를 비추어 한 폭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물새들은 바다의 수면 가까이에서 날고, 크고 작은 배들이 아침을 쉰다. 호수 같은 바다. 평소에 그리워하였기에 한참을 보며 닮아지고 싶다.

돌아 돌아 일산해수욕장 쪽을 바라보니 잔잔하기가 극치에 이른다. 그 뒤에 시가지는 아침을 달리고. 솟아있는 고층 건물 맑은 하늘 보고 인사한다. 불지 않던 바람이 아침 바다 기운을 안고 나의 가슴에, 얼굴에, 머리에 가져다준다. 30대의 한 여인의 요사스럽게 에어로빅 춤을 추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연수원을 나설 때 생기 잃은 나무들이 안개 걷힌 햇살을 받고 생기 얻는다.

이런 좋은 울기공원 다시 가보고 싶다. 다시 그곳에서 근무하고 싶다. 다시 그곳에서 감성을 키우고 지성을 키우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면 한다.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연수원, 인내와 극기를 가르쳐주는 연수원, 자신의 모난 부분을 다듬어주는 연수원,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연수원...이곳이 영원토록 후세들에게 열린 공간, 배움의 공간, 육체와 영혼이 쉼을 얻을 수 있는 쉼터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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