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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30년전 제자의 전화를 받고…

'어허, 이럴 땐 점심식사 초대에 응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고 잠시 머뭇거리고 말았다. 내가 과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짧은 순간에 판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다.

“그래, 언제라고? 토요휴업일 점심이지? 그래 고맙다.”

전화를 건 주인공은 30년 전 초임지 학교에서 가르쳤던 C. 그의 나이를 계산해 보니 40세. 용건인즉, 선생님 30년을 기념하여 당시 가르침을 받던 3명이 동부인하여 식사를 함께 하고 싶으니 나도 아내와 같이 나오라는 것. 그는 작년 스승의 날에는 난(蘭) 화분을, 출판기념회 때에는 문자메시지 연락을 받고 만사 제쳐놓고 달려와 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제자에게 특별히 잘 해 준 것은 없다. 다만, 아픈 기억 하나만 뇌리에 선명하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이었던 나는 자연시간에 학교 뒤 개울에서 야외수업을 하게 되었다. 이 학생은 야외수업이 너무나 좋았는지, 아니면 자기집 가는 길을 선생님에게 안내하려고 그랬는지, 초여름 날씨가 너무나 더웠는지, 개울가로 제일 먼저 달려가 손을 씻고 세수를 하였다. 새내기 교사로서 보건위생을 강조하고 대학에서 배운 이론을 그대로 실천해야만 하는 융통성 없는, 너그러움과 사랑이 부족한 나는 그만 손이 올라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 물이 얼마나 더러운지 아느냐?"(개울 윗동네에서 양돈과 목축을 하고 있었음), 그리고 "단체생활에서 질서를 지켜야지 그렇게 개인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학생의 여린 뺨은 그만 퍼렇게 멍들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여 일어난 체벌이었다. 며칠 동안 그 학생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 학생의 부모님은 아무런 항의를 않으셨으만 못난이 교사를 얼마나 꾸짖었을까? 나중에 알고보니, 그 개울은 내가 보기엔 더럽지만 그 동네에서는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어린이들은 목욕도 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지역사회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가 자의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여 내 생각대로 따라 줄 것을 강요한 것이었다.

바로 그 제자가 만나자고 한 것이다. 3년 전인가 그는 자기가 운영하는 일식집에 우리 가족과 동창을 초대한 적도 있다. 그 때 나는 성인이 된 그에게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며 용서를 구한 적이 있다.

공부 잘 하고 행동이 올바른 학생만이 제자가 아니다. 그들이 사회에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코 흘리며 모습이 꾀재재하고 집안도 그리 넉넉하지 못하고 공부는 비록 앞서진 못하지만 그만의 특기와 장점이 있다. 그들의 마음은 순수하고 바다와 같이 넓다.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그 당시 철부지 교사는 뒤늦게 세상사를 깨달은 것이다.

전화 한 통을 받고 생각에 잠긴다. 동료 누구는 제자 주례를 몇 번이나 섰다는데 나는 여태 한 번도 서지 못하였다. 졸업반 담임을 몇 차례 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자위를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인품이, 덕(德)이 부족해서다. 인격적 감화가 부족하였다. 존경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거나 후순위인데 주례 차례가 올 리 있는가?

3월이면 각급학교의 새학년이 시작된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역사적인 만남도 있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훌륭한 스승의 척도 한 가지로 제자들의 주례를 선 횟수를 넣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나는 스승의 범주에는 아직 속하지 못하고 30년 후 식사 대접을 받는 선생님 정도가 아닌가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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