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하순 경에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부는 다음날 새벽에는 새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 아마 비바람에 시달렸기 때문이리라. 몸살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창문을 여니 그제야 새소리가 가늘게 들린다. 새가 공중을 난다. 몸살 앓은 흔적이 역력함을 알 수 있다.
바깥을 나가보면 1년초(一年草)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수 있다. 쓰러진 것도 있고, 떨어진 것도 있고, 흙 범벅이 되어 있는 것도 있다. 다시 제 모습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비바람이 불지 않았더라면 좀 더 예쁜 모습 더 지녔을 것인데 안타깝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건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못다 핀 꽃의 한(恨), 같은 뿌리 속에서 자란 다른 꽃이 대신해 풀어줄 것으로 생각하니 조금 위로가 된다.
바다 쪽을 바라보니 어제 비바람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뚜렷이 알 수 있다. 바닷물은 흙탕물인가 하면 정신없이 부딪치고 있다. 물결도 어지럽게 울렁댄다. 바닷가의 물거품을 보면 속에 있는 온갖 더러움을 다 쏟아낸 듯하다. 비를 뿌린 검은 구름도 체면이 있는 듯 거의 사라지고 한 구석에만 조금 남아있고, 대부분의 하늘에는 많은 피해를 끼쳐 미안한 듯 엷은 미소를 지닌 채 가볍게 떠 있다.
정신없이 어지럽혀진 바다를 보며 세숫대야에 물을 담고, 머리를 감는다.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서다. 숙소에서 넓은 정원을 보며 머리를 말리는 건 나뿐이리라. 아무리 부자라도 그 넓은 정원을 앞에 두고 수목(樹木)과 화초(花草)를 즐기며 새소리를 들어가면서 머리에 말리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리라. 그것도 비온 뒤의 깨끗한 정원을 앞에 두고 말이다. 그러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머리를 단정히 하고 숲속을 찾는 이도 아마 나뿐이리라. 대부분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며 숲속을 즐기고 나서 목욕을 하고 머리단장을 할 것이거늘, 나같이 세수하고 머리를 단정히 해서 산책하는 사람이 그 누가 있으랴? 남이 안하는 걸 하니 좋다. 색달라 좋다. 나만이 갖는 산책문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머리를 맑게 하고 싶다. 오늘은 6시가 채 되기 전에 연수원을 나섰다.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은 연수원 직원 중 연세 많으신 분이다. 아침 수련생 식사 준비를 위해서다. 그 다음에는 식당 직원 두 분께서 들어오신다. 역시 식사 준비를 위해서다. 그 다음에는 오트바이를 타고 신문배달을 하는 젊은 청년. 울기공원 안에서 열심히 청소하는 청소부 아저씨들.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났단 말인가? 누구를 위해 이렇게 새벽을 깨우는가? 틀림없이 자기 자신도 아니고, 자기 가족도 아니라 남을 위해서, 그것도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분들이야말로 정말 생산적인 사람이다. 이분들은 밖을 여는 사람들이라면 안을 여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남편의 아침 출근을 위해, 딸의 유치원 등교를 위해, 자신의 출근을 위해 새벽부터 움직이는가 하면, 딸을 학교에 보낸 후에 아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분주하게 뛰는가 하면, 자신의 출근을 위해 남편을 보내고 어린애를 어린이집에 맡겨 놓기 위해 시간을 쪼개가며 열심히 뛰는 분들도 역시 생산적인 사람이다.
아침 6시부터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교육기관이 연수원 말고 또 어디 있으랴? 아침 체조로 시작하여 아침수련을 위해 고생하는 교육연구사들. 이들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산다.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산다. 그래도 그것 못 느끼고 산다.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면서. 이제 이런 분들에게 눈을 돌려야 하리라.
적극적이진 못해도 하루의 생산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건강관리를 위해 공원을 찾아 산책하며, 운동하는 이들이 그런 자들이다. 아침 출근을 위해 일찍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준비하는 이들도 마찬가지. 이들도 생산적인 사람과 함께 합류하여 생산을 배가하리라.
아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 생산적인 사람? 아니면 비생산적인 사람? 나도 새벽을 깨우는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생산적인 사람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조금 힘들고 피곤해도 새벽공기를 마시며 새벽이슬을 만나며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는 분명 행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