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은 바다 곁이라 운무로 인해 제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운무(雲霧)가 전혀 없는 날이면 참 좋다. 비가 오고 나면 운무(雲霧)도 체면이 있는 모양인지 맑고 깨끗한 날씨 속에 산책을 할 수 있게 해주어 기쁨이 배가 된다.
5월이 되면 산책로는 온통 신록(新綠)으로 가득 찬다. 나뭇잎은 아침이슬을 머금은 채 굴절 없는 햇살에 더욱 윤기를 더한다. 예쁘고 고운 아가씨의 얼굴처럼 빛난다. 햇살은 오랜만에 찬란하게 비추며 용기를 북돋운다.
운무(雲霧) 없는 동해의 아침 바다를 본 적이 있는가? 운무 없는 동해 아침 바다는 잔치 한마당을 방불케 한다. 붉은 태양이 창공(蒼空)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비춘다. 바다는 온통 축제분위기로 휩싸인다. 물새는 그윽이 해상을 날고, 짐 실은 화물선(貨物船)은 일찌감치 뒤에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수석(水石)실은 길다란 배는 조심스레 놓을 자리 찾는다.
강태공들은 잔치상에 올릴 고기를 잡을 양 이른 새벽부터 여기저기 바위에 걸터 위험을 무릅쓰고 낚시에 몰두하고 작고 귀여운 새는 쌍쌍이 자리를 차지한다. 젊은 부부, 늙은 부부 찾아와 인사하고 대화한다.
바다는 한창 바쁘다. 부글부글 끓는다. 빙글빙글 돈다. 색깔을 화사하게 낸다. 전형적(典型的)인 바다모양을 낸다. 파도 소리를 점잖게 낸다. 홈파진 바위 속으로 우렁찬 소리도 낸다. 바위는 솟는다. 바위는 제 모습 드러낸다. 앞에는 검고, 뒤에는 희다. 갈기갈기 찢어지기고 하고, 유달리 솟아있는 것도 있다. 바다 언덕에는 들꽃이 자태를 뽐낸다. 뒷산의 소나무는 커트한 머리모양 머리단장을 한다. 좌우 보이는 등대는 어젯밤 손님 실은 배 안내하느라 힘든 줄 모르고 멀찌감치 바라본다.
나는 잔치의 주인공인양 대왕암에 올라 좌우를 둘러본다. 바다기운이 감돈다. 평화가 깃든다. 행복이 바다물결처럼 차오른다. 기쁨이 충만하다. 오늘 아침상도 잔칫상처럼 풍부하다. 아침 커피가 달다.
99년 5월 19일 초등48명, 중등 72명 계120명이 울산교육연수원에서 처음으로 교감자격연수를 받는 날이다. 작년까지는 경남교원연수원에서 교감자격연수를 받았지만 금년부터는 울산교육연수원에서 자체적으로 연수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하게 되었다. 이 일을 내가 맡았으니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평일에는 교원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학생수련 중심으로 운영되어 오다가 오랜만에 교감자격연수가 열리게 되었다. 나는 양복차림으로 연수생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연수생 명찰을 앉을 자리에 올려놓고 출석부와 교재를 갖다놓는다. 바쁘게 움직이지만 아무도 도와주는 분이 없다. 전문직은 자기의 맡은 일은 자기가 책임지고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게 특징이다.
전에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 한 분께서 가장 먼저 와서 나를 알아보고 인사한다. 정년단축으로 무더기로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일선에서 물러나니 기본 점수만 있어도 교감연수를 받을 수 있는 때였다. 그래서 가장 많은 교감자격연수를 시키게 되었다.
첫 날 첫 시간 교육감님의 특강이 있었다. 교육감님의 특강 시간에 나도 연수생과 함께 강의를 끝까지 들었다. 갈수록 강의를 잘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육감님께서는 ‘어지럼병이 지랄병 된다’는 말씀을 단골처럼 사용하셨다. 무슨 일이든 너무 집착하면 자기가 하는 일에 감각을 잃는다고 하셨다. 자기가 하는 일이 잘한다고 착각하면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잃은 채 우왕좌왕하게 된다고 하셨다.
그렇다. 언제나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이 바른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올바른지 점검해 봐야 한다. 방향이 잘못되면 간 것만큼 되돌아 와야 한다. 그러니 속도를 좋아하지 말고 방향을 잘 정해야 한다. 잘못된 길이면 되돌아서야 한다. 언제나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귀를 기울여 자신의 방향을 점검해야 한다. 자기의 잘못을 진단해야 한다. 자신의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
교감자격연수가 시작되는 날 오후 날씨가 너무 좋았다. 날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교감자격연수를 받는 선생님들에게 축하를 보내며 힘이 들더라도 연수를 착실하게 잘 받았으면 한다. 울산교육의 새바람을 불어넣어줄 좋은 교감선생님이 다 되셨으면 한다. 이제 교감으로서의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생각, 잘못된 행동들을 과감하게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울산교육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