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3월에 학교를 새로 옮겼다. 광주의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고 80년도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다가 외지고도 또 외진 변두리, 그것도 신설 중학교로 전보발령을 받은 것이다. 인사와 관련하여 말하기로 들면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이 있긴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그냥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 가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마음 속 다짐도 잠시뿐, 나의 전보소식을 접한 주위 사람들의 눈빛과 반응이 참으로 다양하고 기막히기까지 하여 어쩔 때는 속이 상하고 어쩔 때는 원망스럽기조차 하다.
영전을 축하한다는 사람, 벌써 교장으로 승진해서 갔느냐고 묻는 사람들의 경우는, 인사 당사자의 속도 모르고 던지는 겉치레인사로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어쩌다가 그렇게 돼버렸습니까?", "혹시 무슨 잘못을 저질러 좌천이라도 당하신 것 아닌가요?" 하며 범죄인 심리수사라도 벌이는 것처럼 꼬치꼬치 캐묻는 경우는, 걸려온 전화를 당장 끊어버리고 싶고 마주보고 있는 얼굴을 빨리 피하고 싶어진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교직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학교를 옮겨 본다는 것이 그렇게 됐습니다." “좌천은 무슨 좌천이요. 그냥 좀 쉬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이런 저런 해명도 해보건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규모가 크고 교통이 편리한 중심지에 있어서 누구나 근무하기를 선망하는 그 좋은 학교를 버리고 가난한 아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교육민원이 끊일 날 없는데다 교통조차 멀고 먼 변두리 학교로 간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하릴없을 때 심심풀이 땅콩 씹듯, 시간이 남아돌면 남의 일에 나쁜 쪽으로 관심 많은 것이 사람의 속성이라지만 전보인사와 관련하여 드러난 주변 사람들의 이 같은 반응들을 접하면서 안타까움과 짜증이 교차되는 복잡한 심사 속에서 얻은 것이 하나 있다면 인생과 인간을 새롭게 보고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좋은 학교 나쁜 학교의 기준은 무엇일까? 교직생활에서 무엇이 영전이고 무엇이 좌천일까?
고등학교는 근무할수록 그 사람의 관록이 되지만 중학교는 근무할수록 사람값이 떨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도심지 학교에 근무하면 능력 있는 사람이고 변두리 학교에 근무하면 과연 무능한 사람일까? 아,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보지 않고 껍데기, 허상만을 보는 뭇사람들의 어리석음에 견주어 나는 또 얼마나 세상을 바로보고 사는 것일까. 어쩌면 나도 역시 지금까지 진실과 본질을 외면한 채 헛것과 망령에 눈멀어 살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방사는 사람보다 서울 사는 사람이 더 능력 있어 보이고, 마음씨 고운 사람보다 얼굴 예쁜 사람에게 더 혹하고, 가방 끈 긴 사람이 짧은 사람보다 더 실력 있어 보이는 세상, 뭔가 잘못돼도 너무 잘못돼지 않았는가. 학교와 교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은 학교와 나쁜 학교는 그 소재지가 어디냐 또는 교통의 편리 정도에 따라 가름될 것이 아니라 그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교육열에 불타고 헌신적이며 강한 소속감을 가지느냐로 판별되어야 마땅하다.
교육자에게 영전이란, 학교급의 높낮이로 저울질 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보람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교육자인가의 문제 또한 그가 차지한 자리의 높고 낮음보다는 그가 가르치고 기르는 학생들로부터의 진심어린 존경의 정도가 얼마인가로 가늠되어야 되는 것이다.
명철보신의 기회를 탐하는 데 내 교육인생의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이번의 학교 이동은 큰 마이너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난하고 부잡하기 이를 데 없으며 학습여건의 불비로 학력이 떨어진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보살피며 그런 자신의 노력과 헌신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아이들 변화에서 소명을 느끼며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교육자 본연의 길을 만났다는 점에서는 더없는 기회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교감 선생님. 앞으로 겪어보시면 알게 되시겠지만 여기 애들, 정말 착해요. 공부 못하고 속 썩이는 애들 때문에 담임노릇 힘들기도 하지만 제가 신경 쓰는 만큼 매일매일 달라지는 아이들보면 아침 출근 시간 저절로 빨라지고, 어떤 날 퇴근시간 조금 늦어져도 마음이 즐거워요. 아마 이런 것이 교육의 보람인가 봐요.”
학교 순회를 하다 선생님들의 애로를 청취코자 잠시 들른 학년 교무실에서 한 여선생님이 진정어린 눈빛과 함께 건네는 말씀 속에서 우리 학교, 우리 교육의 무한한 희망을 읽을 수 있으니 이만하면 오늘 나는 충분히 행복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