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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나도 엄마가 보고 싶다


학년 선생님이 쓰는 교실 일기. 2007년 3월 26일 월요일

개구쟁이 1학년 20명과 함께 산 지 19일째입니다.

1학년의 발달 단계로 보아 매우 자기중심적이어서 뭐든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입장은 안중에 없답니다. 자기 배가 고프면 아무 때나 ,
"선생님, 배고파요. 밥 언제 먹어요?" 를 외치며 내 눈을 빤히 쳐다 본답니다.
점심을 먹다가도 갑자기 화장실 생각이 나면 바지 위로 고추를 꼭 잡고서는,
"선생님, 쉬 마려워요!" 하는 아이들이랍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선생이라는 의식보다는 엄마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규칙이나 질서를 앞세워서 아이들의 생리 욕구까지 억제할 수 있을만큼 야무지지 못한 담임이 분명하지요. 감기에 걸렸는지 학교에 오자마자 목소리가 안 나온다며 몇 번이나 나를 붙잡던 우리 반 반장인 시원이는 친구들과 놀 때는 소리도 잘 질러서 목이 잠길까봐 말을 줄이라고 달래 보아도 그 때 뿐이랍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점심을 다 먹고 난 주일이는 갑자기 운동장의 모래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러서 지나가는 형들이 깜짝 놀라 나를 부르기도 했던 오늘. 얼마나 아이들다운지 나 혼자 웃었답니다. 따스한 봄볕에 뽀송뽀송한 모래 위에서 뒹굴고 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공부 시간에 자기의 장래 희망을 발표하는 시간에도 한바탕 웃었답니다. 비행기조종사가 꿈이라던 시원이는 자기 친구인 세준이가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자기도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며 말을 바꾸었답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랍니다. 한 아이가 택시기사가 되고 싶다고 하니 3명의 남자 아이들이 자기들도 꿈을 바꾸겠다며 나를 졸랐습니다. 특이한 건 남자 아이들의 대부분은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하고 여자 아이들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설마 안정된 직장을 바라는 어른들에게 강요된 희망이 아니기를 바래어 본답니다.

1학년 아이들은 이 봄날에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산과 들에서 고운 자태를 드러낸 봄꽃들처럼 해맑아서 꽃구경을 가지 않아도 좋을만큼 나를 취하게 만든답니다. 화가가 되고 싶다던 건후는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그림의 색칠하기나 가위질이 다 끝나야만 다음 공부를 시작할만큼 집중을 잘 한답니다. 예술을 지향하는 아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여려서 아이들의 장난스런 말 한마디에도 곧잘 눈물을 보여서 상처를 받지 않도록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느라 지쳐 버려서 나도 배가 고파진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배고프다고 투정을 부리고 싶어진답니다. 우리 아이들처럼 어렸으면 참 좋겠습니다. 밥을 해놓고 기다려 줄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서 어리광 부릴 엄마가 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그리움이 와르르 몰려옵니다. 아기자기한 모습, 작고 귀여운 모습이 우리 반 아이들을 꼭 닮은 봄까치꽃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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