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제 한 밤만 자면 소풍 가요?" "내일 비가 오면 어떻게 해요?" "내일 비 안 오니까 걱정 마세요." "그래도 비가 오면요?" "그럼 교실에서 도시락 먹고 놀까?"
1학년 우리 반 아이들은 요즈음 며칠 동안 소풍 이야기뿐입니다. 1학년 아이들은 시간 개념이나 날짜 관념이 약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요. 손에 꼭 쥐어 주어야만 알아 듣습니다. 소풍을 간다고 옷을 사 입는다며 자랑하는 아이, 과자를 몇 개 사올 건지 손으로 세는 아이 등, 날마다 소풍 이야기랍니다.
그런데 우리 반에는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도 있고 할머니랑 사는 아이도 있으며 부모님이 계신다고 해도 일터에 가시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소풍날에 지킬 약속을 말하면서 조건을 붙였습니다. 부모님이 따라 오지 않으시면 자기 칭찬 스티커를 많이 주겠다고 말입니다. 다 같이 따라 오지 않으시면 상처 받는 아이들이 없을 것 같아서 생각해 낸 것이지만 자꾸 걱정이 됩니다. 1학년에 처음 보낸 부모님들이 자녀가 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분도 계실 것 같아서입니다. 차마 오시지 말라고는 못 하고 혼자 용감하게 온 친구에게는 칭찬 점수를 많이 주겠다고 했지요.
어른들이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칭찬 사탕 하나에도 글씨를 예쁘게 쓰기도 하고 먹기 싫은 밥도 잘 먹는 아이들입니다. 1학년 단계의 아이들에게는 칭찬 요법이나 행동수정의 기법들이 잘 통한답니다. 꾸지람보다는 칭찬이 훨씬 효과적이므로 적절하게 잘 활용하면 벌을 주지 않고도 좋은 습관을 갖게 하거나 매를 없애는 방법으로도 쓸 수 있답니다.
내일 소풍을 가는데 나도 모르게 창밖을 내다 봅니다. 행여 비가 올 날씨는 아닌지, 하늘은 맑은 지... 그러고 보니 별과 달이 뜨고 지는 지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할 게임 준비를 하다가 어린 시절 생각이 났습니다.
소풍날이면 김밥 대신 계란말이 반찬과 시금치에 멸치 볶음을 넣어 주시던 어머니였습니다. 계란은 아버지만이 드시는 것이었고 시금치와 멸치도 평소에는 별로 먹지 못할 만큼 귀한 것이었으니까요. 거기다가 계란을 두 개쯤 삶아서 가져 갔고 아버지께서 담임 선생님께 드리라며 꼭 챙겨 주시던 아리랑 담배 한 갑에 사탕 몇 개면 소풍 준비가 끝났지요. 학급 반장이었지만 가난했던 나는 소풍 때만 아버지가 피우시던 담배 한 갑을 선생님께 드릴 수 있어서 참 좋았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선생님 도시락을 한 번도 해 드리지 못 했던 가난한 반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없을 때는 내 몫의 찐 계란 하나에도 기분좋게 받아 주시던 선생님이 좋았습니다.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시던 선생님 덕분에, 발표를 한 번도 하지 못 해도 내 일기장을 읽으시고 내 생활과 우리 집을 이해해 주신 선생님 덕분에 국민학교 졸업을 겨우 마칠 수 있었던 내 삶 속에서 선생님은 늘 희망을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때문에 교직을 선택하여 소신껏 살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때의 그 선생님들보다 나는 훨씬 못한 선생이지만요. 찐 계란을 먹을 수 있었던 소풍을 몇 번, 운동회 몇 번 만이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되는 유년.
어쩌다 소풍에 입을 새 옷을 사주시면 더욱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도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어쩌다 엄마가 소풍에 따라 오시면 무작정 든든하고 기뻤던 생각이 나니, 우리 반 아이들에게 엄마가 따라 오지 않으시면 더 기특하다고 한 게 마음에 걸립니다. 상처 받을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지만 괜히 미안해집니다. 부모님과 함께 밥도 먹고 사진도 함께 남길 좋은 기회인데...
교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자연의 모습을 관찰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맛있는 간식과 김밥도 먹을 수 있는 즐거운 소풍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지금쯤 모두 다 곤한 잠에 들었겠지요? 진달래가 활짝 핀 산길에서, 청개구리가 폴짝폴짝 뛰노는 들녘에서 예쁜 꽃들과 눈맞춤을 하며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 있는 것들이 주는 경이로운 발견에 눈동자가 커지는 순간이 많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 반 꼬마들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로부터 그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받아 들일 수 있는 감미로운 자극을 많이 만나는 소풍이기를 바랍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길을 오르고 돌부리에 채이면서도 의젓하게 울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사랑하는 친구들과 잘 놀다 왔으면 좋겠습니다. 한 아이도 다치지 않고 눈물 흘리는 소풍날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도 잠을 청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