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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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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오늘은 즐거운 소풍날입니다. 우리 반 꼬마들이 알록달록 예쁜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거북이 등딱지처럼 자기 등보다 더 큰 가방까지 메고 왔어요.
교문 앞에서는 언제 왔는지
장난감 장수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풍경
군것질이 금지되어 있지만 오늘만은 선생님들도 모른 척 해줍니다.

모둠끼리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작은 깔개를 가져 오기로
약속을 한 은지의 손에는 짐 가방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사는 은지는 약속도 잘 지키고 준비물도 잘 챙깁니다.
할머니가 글을 모르시니 알림장도 혼자 다 챙기는 은지.

소풍날 공부할 준비물인 수첩까지 챙겨온 은지를 위해
나는 산에서 본 것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적어 주었어요.
사철 나무, 철쭉, 진달래, 삘기, 완두콩꽃, 감나무, 등나무꽃,
개미, 거미, 청개구리, 나비, 벌 등 20가지 쯤.
그 은지가 보물 찾기를 못 했다고 삐져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보물 찾기는 다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몇 사람만 찾는다고 해도,
그래서 보물이라고 해도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

선생님이 가르쳐 준대로 아무리 뒤져 봐도 없다고 골을 내서
돌아오는 내내 나랑 말도 안 했습니다. 발을 톡톡 차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눈가에 눈물 자국을 남기고 앞서 가며
월요일에 선물 사다 준다고 해도 막무가내인 은지.

이제 보니 욕심이 많아서 뭐든 잘 하겠어요.
안심이 됩니다. 저런 욕심이라면 험한 세상을
잘 헤쳐 나가리란 확신이 들어서
대견함에 혼자 웃었습니다.

어쩌면 저 아이 모습 속에서 어린 나를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일 하는 엄마 밑에서 혼자서 소풍을 다니고 운동회를 치른
우리 집 두 아이의 모습을 찾았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 집 두 아이의 어린 날 중요한 행사 사진 속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엄마 얼굴이 나의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소풍날에도 운동회 날에도 입학식에도 심지어
대학교 졸업식 사진에도 없는 내 얼굴.

우리 은지도 그렇게 홀로 서기 연습을 하며 인생의 길을 묵묵히 걸어서
키워주신 할머니에게 속울음을 안겨 주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소풍 가듯이 즐겁게 걸으리라 믿어봅니다.

집에 와서 전화를 하고서야 그래도 삐짐이 남아 있던 아이가 겨우 달래졌어요.
교실에서만 보는 아이들과 나가서 보는 아이들 모습이 참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늘 가여운 은지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는데
이젠 다른 아이들처럼 편하게 봐 줄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행복한 소풍날이 되었습니다. (4월 27일 소풍을 다녀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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