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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조선의 역사가 보이는 청계천 다리 이야기


난 청계천을 직접 본적이 없다. 몇 년 전 복개된 도로를 뜯어내고 청계천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때 텔레비전 속에서만 그 모습을 잠시 보았다. 텔레비전 속에 비친 청계천은 피상적인 것일 뿐이었다. 하여 새로운 청계천을 보고 온 친구에게 청계천에 가고 싶다고 하면 ‘볼 게 별로 없어.’ 하는 시큰둥한 반응뿐이었다.

왜 사람들은 새롭게 태어난 그 청계천을 보고 볼 게 없다고 할까. 어떤 정치인은 그 청계천 하나로 유력한 대권주자까지 되었는데 말이다. 그 이유를 <조선의 역사가 보이는 청계천 다리 이야기>(김숙분 글 / 정림 그림)를 읽으며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내게 볼게 없다고 한 친구는 아름답고 화려한 어떤 볼거리를 생각했는데 그건 없고 흐르는 물만 보았던 것이다. 물가에 수양버들이라도 있다면 한껏 운치라도 있었을 텐데 그것도 없으니 볼게 없다고 할만 했다.



청계천에는 22개의 다리가 있다. 그 청계천 다리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다. 그 다리를 따라가면 조선 600년의 역사가 숨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생활했다. 그리고 명절 때마다 다리밟기, 연등행사, 편싸움 등 다양한 놀이가 청계천에서 펼쳐졌다. 이에 다리 이름 때문에 동네이름이 생기기도 하고, 동네 이름들이 다시 이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청계천의 다리 이름엔 다산교니 고산자교니 하는 역사적 인물을 딴 이름과 삼일교 같은 역사적 사건을 딴 이름도 있다.

그러나 그 청계천 다리의 유래나 역사적 사건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흔한 안내말도 없다. 그럼 청계천을 따라가 보자. 총 2권으로 되어있는 ‘청계천 다리 이야기’는 무학대사를 기념하는 무학교를 시작하여 3 ․ 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삼일교까지 이야기가 당시의 인물들과 다리의 유래, 특징이 당시의 사진과 그림과 설명되어 있다.

신장석으로 놓은 광통교

처음 청계천의 다리는 나무로 만들었거나 흙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비가 오면 다리가 무너지고 물에 휩쓸려나갔다.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이 된 태종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태종이 왕위에 오른 지 10년 되던 해에도 홍수가 나 청계천이 범람하고 다리가 무너졌다. 이에 태종은 새로 만든 다리는 돌다리로 하기로 했는데 그 다리의 기초를 계모인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 주위에 있던 신장석을 이용하도록 했다.

신덕왕후 강씨는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으로 조선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이방원 대신 자신의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했다. 나중에 왕이 된 태종은 이런 강씨를 미워하여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을 도성 밖인 사흘한리로 옮겼다. 이때 신덕왕후의 강씨의 무덤 주위에 있던 신장석들은 내팽겨져 있었는데 태종은 이 신장석을 광통교의 기초로 쓰게 했다.

그런데 태종은 이 12개의 신장석을 기초로 삼을 때 거꾸로 묻게 했다. 태종의 강씨에 대한 미움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던 광통교의 신장석은 1958년 청계천을 복개하면서 묻혔다가 이번 복원공사를 하면서 제 모습을 찾았다.

왜 다리 이름이 수표교일까?

수표교 하면 거지들이 생각난다. 예전에 했던 ‘야인시대’라는 드라마에서도 수표교 밑에 많은 거지들이 생활하는 장면을 봐서인지 모른다. 실제로 조선 시대부터 청계천 다리 밑엔 많은 거지들이 살았다 한다. 이마에 죄인의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거지가 되어 다리 밑에 모여 살게 되었다 한다.

수표교는 본래 마전교였는데 세종은 장영실에게 물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수표를 마전교에 세우게 했다. 오늘날에도 물의 수위를 알기 위해 한강 수역에 수표를 세우듯 당시에 수표를 세웠다는 사실은 홍수가 날 때 과학적으로 물의 수위를 측정함으로써 물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이다. 이때 수표를 세웠다 해서 마전교를 수표교로 불렀다 한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청계천에서 다리밟기를 하며 소원을 빌던 이안눌의 이야기, 조선의 왕 중에서 청계천을 가장 사랑한 영조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나온다. 또 조선의 백성을 위해 애를 쓰며 역사, 지리, 철학, 문학 등 수많은 저서를 남긴 실학자 정약용을 기리는 다산교와 평생 지도를 만드는 일에 힘썼던 고산자 김정호를 기리는 고산자교까지 다리에 얽힌 인물과 역사, 당시 사람들의 생활의 모습이 그림과 사진을 곁들여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청계천을 거닐면서 이런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현재의 청계천의 모습이 옛날의 청계천의 모습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청계천을 걸으면서 맑은 물과 물고기만 볼 게 아니라 청계천의 의미와 다리의 유래를 이야기해주면 훨씬 청계천이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청계천에 갈 땐 그냥 가지 말고 청계천의 이야기들을 알고 가보자. 그리고 청계천을 거닐면서 조선의 생활과 역사, 인물들을 이야기해 보자. 조선 600여년의 역사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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