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하이킥’이 정말 거침없다. ‘야동순재’인 70대 할아버지부터 ‘랜덤준이’인 1살 아기까지 전세대를 아우르는 시트콤 하나가 안방극장에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젊은층의 입맛에 맞게 편성하는 현방송 추세에 역행하는 쌩뚱맞음에도 전출연진이 인기급상승이다. 시청률을 좌지우지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춘 감각적인 트렌디드라마도 아니고 1대부터 70대까지 마구 섞인 짬뽕이나 다름없는 시츄에이션 시트콤이 왜 인기일까?
우선 가족의 이야기이기에 전층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고, 있을법한 이야기를 좀 더 과장되게 웃음 형식으로 전달하는 까닭이다. 이혼한 아들의 혈육을 맡아 키워야하는 할머니, 고등학교라는 현장에서 자리매김의 입지가 현저히 낮은 여교사의 수난사, 권위주의의 표상이지만 종이호랑이 신세가 된 할아버지까지 모두 나의 이야기고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지금은 사라진 대가족이라는 코드의 향수와 그 세대의 인물을 능청스럽게 연기해내는 조연들의 감칠맛이 한몫 더해 인기는 가히 점입가경이다. 특히 할아버지 역할을 맡은 이순재는 1935년생으로 실제나이가 73살이라서 그 나이대의 연기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한마디로 진국이 줄줄 흐른다. 만약 인기절정의 젊은 배우가 주름살분장을 하고 할아버지 역을 했다면 분명히 실패했을 시트콤이다.
야동순재, 탐정순재, 악플순재, 율동순재, 여성순재, 비니순재, 투혼순재... 별명의 수만큼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70대 노장 이순재는 그 여세를 몰아 무려 7개의 CF를 거머쥐었다. 돼지바, 인사돌, 다음 UCC, LG카드, 라이나생명, 웰스정수기, 통마늘진액.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예전에 비해 인기의 수명이 턱없이 짧아진 연예계에서 본다면 분명히 이상기변에 가까운 사건이다. 더군다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10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퇴역해서 공원이나 산책하다가 공로상 시상식 때나 볼 그런 연세에 손주뻘되는 10대의 스타라니?
역대 시청률 2위를 자랑하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아버지로 한창 뜰 때도 누리지 못한 인기였다. 그 당시의 연기대상은 이순재의 아내로 나왔던 김혜자가 탔다. 상복이 많은 김혜자는 3번씩이나 연기대상을 수상했음에도 이순재는 늘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다. 받을만함에도 상복에서는 벗어나 있던 그가 말년에 대히트를 치고 있다.
연기자라면 누구나 꿈꿔보는 연기대상, 젊은 날의 한철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외길만 보고 걸어온 그의 내공이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지금의 인기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그만이 뿜어내는 녹록치 않은 연기력을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방송을 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어설픈 주인공보다는 조연으로 뼈가 굳은 중년연기자의 맛깔스런 연기 덕분에 드라마가 돋보일 때가 많다. 이들은 젊은 날에 자기와 같이 입사한 동기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단역이나 험한 역을 무수히 거치면서 연기내공을 쌓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연기에는 진솔함이 묻어나고 아직 설익은 주인공의 연기를 받쳐주는 조연급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와는 반대로 트로이카니 뭐니 해가면서 브라운관을 누비던 왕년의 스타가 나이 들어 다시 복귀했을 때 연기력 시비에 휘말리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젊은 시절 주연만 꿰차며 자기의 미모만 믿고 제대로 된 연기를 배우지 않았던 탓에 무명의 설움을 견뎌가며 연기력을 쌓아온 조연들과 게임이 안되는 탓이다.
한 편의 멋진 드라마는 열성팬을 몰고 다니는 젊고 예쁜 주인공의 힘만으로 탄생되지 않는다. 팬 하나 없어도 진정으로 연기만을 사랑하며 묵묵히 외길을 걸어온 탄탄한 조연급들이 포진해 있기에 그들이 더 빛나 보이는 법이다. 우리 교육계도 마찬가지다.
급변하는 세대에 발맞출 수 있는 유능한 젊은 피도 필요하지만 수많은 가시밭길을 헤치며 교단을 지켜온 조연급의 베테랑 교육자도 필요하다. 아직도 철부지인 1학년 새내기부터 교직경험 풍부한 할아버지 교사까지 전층을 아우르는 그런 교육구성원일때 제대로 된 한 편의 학교드라마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라는 것은 아니 교육이라는 것은 젊은이들의 혈기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야동순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같다. 경제논리에 의해 노령 교사는 퇴출시켜야한다고 아니 고려장시켜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야동순재에게 한 수 배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