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樂聖) 베토벤은 청각이 마비되는 가운데에서도 '전원'이나 '합창' 같은 뛰어난 교향곡들을 완성해냈다. 자신의 귀로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듣는 기쁨'을 선물한 것이다.
음악과 귀가 불가분의 관계라면 미술은 눈과 떨어질 수 없다. 듣지 못하는 음악가가 있었다면 보지 못하는 미술가의 존재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30일까지 열리는 '우리들의 눈: Another Way of Seeing'전은 맹아들의 미술작품이라는 조금은 낯선 세계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우리들의 눈'전에는 오키나와맹학교와 코베시립맹학교 등 일본 맹아들의 작품 20여점과 충주성모학교, 서울맹학교, 한빛맹학교 등 우리나라 맹아들의 작품 30여점이 전시돼 있다.
충주성모학교 이상지 학생이 철사로 만든 작품의 제목은 '비행기로 시작하여 물고기가 되었다'. 모형 비행기를 만져보고 만들기 시작했는데 완성하고 보니 물고기처럼 만들어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이나 새, 발, 얼굴 등 친숙한 사물을 찰흙으로 빚어낸 전시작들에는 실물과 똑같은 정교함이 없다. 미술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화려한 기교도 물론 없다.
그러나 눈이 주는 일체의 선입견과 편견을 벗어버린 어린 예술가들의 창작력만은 보는 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국내 학생들의 작품은 모두 올 한해 동안 만들어진 것이지만 일본에서 건너온 작품 중에는 50년대에 제작된 것들도 많다. 시각장애아들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동경 톰갤러리(Tom Gallery)의 작품 중 일부를 옮겨왔기 때문. 쉰이 넘은 시모지 유키오씨의 작품 '좌상'은 그가 14살 때 만든 것이다.
1950년 일본 맹학교에서 처음 미술수업을 시작했을 때, "본 적도 없는 것을 어떻게 만드느냐"며 아이들은 찰흙에 손도 대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직접 더듬고 만지작거리면서 아이들은 차츰 형체를 만들어나갔다.
장애인 미술이 일반인들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번 전시의 의의는 크다. 전시관을 다 둘러볼 즈음에는 누구나 편견을 뛰어넘는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회를 주최한 한국시각장애인예술협회는 시각장애인들의 예술적 재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97년 결성된 단체. 화가, 큐레이터, 미술언론·출판인 등 미술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박물관 내 시청각실에서는 협회의 맹아 미술교육 모습을 엮은 현장 다큐멘터리도 하루 두 번
상영된다. 문의=02-3277-3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