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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행복 삼대, 교육자의 길

젊은 날에 선생님이 안 되었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회사원이 되었을까, 아니면 장사꾼이 되었을까? 한때는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도 싶었고, 전업 작가의 꿈을 키우기도 했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평생의 업을 교육으로 정하고 교단에 선 지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에 흘렀다. 이 정도 연륜이면, 어느 한 직장에서 큰 과오 없이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하며 일이 순탄히 풀렸다고 가정했을 때 회사에 들어갔더라면 임원급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장사를 해서 잘 풀렸더라면 꽤 성공한 중소기업인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군 지휘관으로서 능력을 발휘했더라면 별 한두 개를 단 장군이 되어 있을 것도 같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더라면 여기저기 이름 석 자 올리며 필력을 자랑하고 있었을 법도 하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어찌 보면 참으로 부질없는 이 같은 상상에 빠져보는 것은, 부와 명예와는 거리가 먼 학교에 몸담고 있었던 탓에 놓쳐버렸는지도 모를 규모 미상의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명성, 개인적 입지를 안타까워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교직에나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다른 직장에 몸담았더라면 부족한 처세술과 기민하지 못한 셈법, 똑 부러지지 못한 유약한 심성 그리고 고갈된 영감에 비추어 그리 크게 성공한 삶을 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면 안도의 숨을 내쉬어야 할 판이다.

교문 밖 한걸음만 나서도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잠시라도 방심해서 눈 감고 있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에서 집과 학교를 오가는 가운데 참으로 순량한 아이들과 고락을 나누며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교육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 중의 축복이며 영광 중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한때 교직이 별로 인기가 없었을 적에는, 이것저것 해보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마지못해 내린 선택으로‘이제 할 것 없으니 선생이나 한번 해볼까?’하는 식으로 교단에 들어온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언감생심, 교직을 아무나 하려고 들면 쉽게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알았다가는 물정을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얼간이 취급을 받게 되었다.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을 나와 교원 채용 임용고사에 합격하려면 몇 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할 정도로 실력이 있어야 하며, 하려는 사람은 많고 자리는 부족한 탓에 임용고사를 대비하는 재수, 삼수생이 도처에 즐비한 실정이다.

누가 그랬다던가? 어지간히 노력해서는 먹고 살기 힘든 판에 어느 집안의 아들 하나가 고생고생해서 교사로 발령을 받게 되자 온 동네가 잔치를 벌였는데 축하하러 온 사람들이 너나없이 하는 말, “이 집은 자식 낳아 선생님을 만들었으니 3대가 행복하겠군!”했다한다. 그 부모가 행복하고 교육자가 된 본인이 행복하고 그 자녀 또한 행복하니, 틀림없이 행복 3대 아닌가!

내가 교단에 서던 시절은 지금처럼 경쟁률이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경우도 지금 3대가 행복하다. 젊은 나이에 일찍이 혼자되신 이후, 그 모질고도 힘든 삶을 꿋꿋이 이겨내시는 가운데 6남매를 정성껏 가르쳐서 바르게 키워내신 어머님께서는 당신의 자식이 교육자라는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계시며, 내 자식들 또한 제 아버지 직업이 교사라는 것을 남들 앞에 크게 자랑삼지는 않는다 해도 한 번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나 역시 비록 가진 것은 넉넉하지 않아도 남의 스승 된 사람으로서 바르게 살지 않으면 스스로 욕될세라 몸과 마음 쉬 흐트러뜨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서 교육자 된 사람으로서의 자긍심을 놓아버린 적 결코 없었으니 이 어찌 행복이 아니겠는가.

안타까운 것은, 이토록 소중한 직업,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그 애를 쓰면서도 막상 교육자가 되고나면,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겠다던 자신과의 약속, 그 초심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마치 천년만년 밥걱정 안 해도 되는 신의 직장, 철밥통을 꿰어 찬 양 나타와 안일의 고치 속에 들어앉아 버리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는 상항에서 요즘 선생님들에게 사도가 어쩌고 소명의식이 어쩌니 들먹이는 일 자체가 고루하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교육자의 본분 아닐까? 예로부터 회자되는,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얘기가 어쩌면 아이들 하나라도 그릇될까 노심초사하는 우리 교육자들의 힘겨운 수고로움을 풍유한다고 볼 때,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런 노고를 기껍게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들이 바로 선생님들이었기에 ‘군사부일체’와 같은 사회적 존경과 숭모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날로 고조되는 교육 불신현상을 놓고 툭하면 사회를 탓하고 학부모나 학생을 원망하기보다는 그 책임이 우리 스스로에 있음을 깨닫고, 참으로 복된 일터에서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일깨워가며 아이들 사랑해주고 열심히 가르치는 일에 교육자 모두가 팔을 걷어붙인다면 학교는 분명 밝고 희망찬 활로를 활짝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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