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더위를 의연하게 이겨낸 은행나무. - 우리학교 교목이다.>
오늘 새벽에는 이불을 끌어다 덮을 정도로 날씨가 선선했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뽀송뽀송한 감촉이 좋아 한동안 이불을 껴안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잠자리를 즐기다 그만 늦잠을 자고야 말았습니다. 처서의 늦더위가 까마귀 대가리를 벗길 정도로 기승을 부려도 어느새 가을은 우리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모양입니다.
과일이 익어 가는 달콤한 냄새와 억새가 시들어 가는 상큼한 풀 냄새가 열려진 창틈으로 미세하게 풍겨옵니다. 그동안 교정의 벚나무를 아지트 삼아 쓰-름, 쓰-름 힘차게 울어 젖히던 매미소리도 오늘 아침엔 어쩐지 힘을 잃은 것 같습니다. 진입로의 베고니아는 선홍빛의 꽃잎과 잎사귀가 한결 짙어졌습니다.
학교 주변의 옷가게에는 벌써 가을 상품이 입하되었다는 전단지가 나붙고 책상 위 캘린더에는 추석연휴를 나타내는 붉은 글씨가 점점 선명해지는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방학 내내 한여름 뙤약볕아래 호박잎처럼 축축 늘어져있던 아이들도 다시 생기를 되찾기 시작합니다.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과학동과 음악실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옵니다. 아침을 행복하게 열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입니다.
선생님들도 2학기 수업 준비를 위해 분주합니다. 방학 동안 받았던 각종 연수 이야기며 2학기에 펼쳐질 상호장학 문제로 교직원 휴게실이 떠들썩합니다.
방학 동안 정지되었던 에어컨 실외기도 커버를 벗은 채 다시 돌아갑니다. 교정 구석구석마다 은밀히 숨겨져 있던 과자 봉지 등도 오늘 아침엔 아이들에 의해 샅샅이 수색되어 그들이 있어야할 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보내졌습니다. 다만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쓰레기 분리수거를 돕던 아저씨가 방학중에 그만 큰 교통사고를 당해 오늘부터는 선생님들이 직접 도와야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이도 행복한 일입니다. 고무장갑을 끼고 쓰레기 분리 수거를 하며 자원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테니까요.
교문 앞에 우뚝 서 있는 저 청청한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남은 2학기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보는 싱그러운 처서(處暑)의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