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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주말이면 딸과 함께 지내려고 광주에 있는 집에 간다. 떨어져 지내온 딸아이와 시간을 함께 하고 두고 온 집안을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의 휴식처인 목욕탕에 가기 위해서이다. 직장에 다니는 딸아이를 놔두고 남편을 따라 내려온 강진에서는 목욕탕에 갈 엄두를 못 낸다. 혹시나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곱지도 않은 알몸을 보일까 봐 염려가 되어서이다. 그 쑥스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 말이다.

날마다 샤워를 해도 사우나실에 들어갔다가 냉탕에 들어가는 그 시원한 맛을 집에서는 누릴 수 없으니 주말에 가는 목욕탕은 필수 코스가 되었다. 마치 땡볕에 내리는 한 줄기 소나기 같은 시원함은 좋은 책을 읽다가 만나는 가슴 먹먹한 감동을 주는 명문장처럼 가슴을 시원하게 하기 때문이다. 감동을 주는 문장을 만나면 손이 아픈 것도 잊은 채 독서 노트에 옮기며 정지된 시간을 느끼곤 한다. 영혼을 위한 다이어트가 독서라면, 건강한 몸을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목욕탕의 냉탕 속에서 명상을 즐기는 것이다.

목욕탕에 가면 나는 원시의 나를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알몸으로 그렇게 행복한 유영을 즐겼을 태초의 나를 만나는 것이다. 나와는 인연이 먼 어머니라는 이름을 목욕탕에 가면 만날 수 있으니 냉탕 속에서 곧 태초에 내가 헤엄쳤던 그 평화롭고 자유로웠을 나의 생명수를 기억하는 것이다.

어쩌면 휴가철에 바다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심리 속에는 그런 내면의 목소리가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어머니의 바다 속에서 알몸으로 우주를 누볐던 그 고향 바다를 그리워하면서.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면 목욕탕에서 되도록 입을 무겁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가는 것이 최상이다. 원시의 나를 만나기 위해, 명상을 하기 위해 가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뻔한 이야기들로 귀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귀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마음을 비우며 내가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곳도 목욕탕이지만 메모를 할 수 없는 것이 늘 아쉽다. 그것마저도 비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면벽수도하듯 침묵을 즐기는 그 곳은 나의 휴가 장소이다. 내 몸의 70% 이상이 물임을 잊지 않으며 다시 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물처럼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익명이 약속된 그 곳에서 모두 원시인이 되어 오로지 자신의 몸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날마다 고마운 줄 모르고 부려온 몸을 위해 그렇게 노력하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고생스럽게 내 몸을 떠받치며 힘들어하는 내 발을 그처럼 소중하게 만져 주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생각해 보게 되는 곳.

누구나 얼굴이 되고 싶어 하는 세상, 누군가에게 보여 지기 위해 애쓰는 세상에서 얼굴과 발이 그처럼 평등한 대우를 받는 곳이 어디 있을까? 나는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하곤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발가벗고 다닌다면, 자신을 감추지 않고 살아야 하며 옷을 입는 것이 잘못이라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인간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원죄를 지으면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인간.

그러나 이미 영혼을 감싸고 있는 몸이라는 옷을 입고 있으면서 그 위에 다시 옷을 입기 시작하고 다시 더 큰 ‘집’이라는 옷을 갖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치며 자동차라는 발을 더 소중히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행복을 얻으려면 모두 버리라고 했던가. 현세의 삶에서는 모두 버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러니 목욕탕에 가서나마 알몸만 남기고 잠시나마 모두 버리며 행복해지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가족도 잠시 버리고 거추장스럽게 몸을 감싸고 있던 옷이라는 껍데기도 버릴 수 있는 그 곳만큼 명상하기에 좋은 곳은 없다.

나는 남들처럼 휴가를 즐기기 위해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아니, 즐겁게 노는 방법을 모르고 살아 왔다고 해야 더 맞는 표현이다. 살면서 주기적으로 나를 위한 휴식을 찾으며 살기 때문이다. 마음이 허전하거나 삶에 회의가 들 때면 책을 찾아 나서고 몸이 힘들면 대중목욕탕에 가서 명상을 즐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발가벗고 우글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생동감이 좋고 지극히 원시적인, 그리고 가식이 없는 그 공간에서 자연주의 사상가 루소나 소로우, 간디를 떠올릴 수 있으니 최고의 휴식처인 셈이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모성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까지 만날 수 있으니 살아 있는 동안 나는 대중목욕탕을 사랑할 것 같다. 얼굴만큼 발까지 대접받는 그 곳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 힘든 사람들도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면 너무 거창한, 다소 이상한 사람일까?

휴가철이 끝나가건만 일밖에 모르는 남편에게 투정을 부린 게 미안해진다. 멀리 있는 아들 녀석에게 다녀오는 것으로 휴가를 대신하자던 내 말에 얼른 따라나서던 그에게 참 미안하다. 이른 아침 아들과 함께 오르던 대학교 뒷산에서 내려다 보던 서울. 전방에서 고생하고 제대하여 복학한 아들은 휴가라는 말조차 모르고 혼자서 이 더운 여름을 나고 있으리라. 삼복 더위에 삼계탕 한 그릇도 함께 먹지 못한 어미의 아픈 마음도, 자식들을 멀리 두고 보는 이 그리움마저도, 그 곳에 가면 잊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아니다. 자식들 대신 나를 기다리는 20명의 아이들에게 이 그리움을 풀어 놓으면 모두 받아주리라. 아이들은 모두 천사이니까 언제든지 그들 품으로 돌아가면 된다. 재잘거리며 웃는 소리, 까만 눈동자, 작고 앙증맞은 손가락, 통통거리는 발걸음이 보고 싶다. 목욕탕이 쉼터라면 교실은 내 마음이 사는 곳이었구나. 아이들이 그리운 걸 보니 개학날이 가까웠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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