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날씨와 오늘 날씨는 완전 딴판이다. 다른 세상에 사는 느낌이다. 새벽만 해도 그렇다. 멀리 했던 이불을 찾게 되고 열어 두었던 창문을 닫게 된다. 그렇게 심술을 부리던 더위가 이제는 고개를 숙일 줄 안다. 얄미울 정도로 자기 분수를 모른다 싶었는데 늦게나마 고개를 숙일 줄 아니 다행이다.
더위 자체가 얼마나 좋으냐? 더위로 인해 벼들이 얼마나 잘 익어가나, 온갖 병충해들이 도망가지 않는가? 말할 수 없이 더위가 좋기는 하지만 때를 놓치고 시기를 놓치면서까지 괴롭히니 더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인생만사도 그러하지 않나 싶다.
날씨가 더울 때 참지를 못해 바람을 탓하기도 한다. 바람이 좀 불어 주었더라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었더라면 하고 말이다. 또 날씨가 더워 견디기 힘들 때 이겨내려고 하기보다는 구름을 얼마나 원망했나? 구름이 왜 비를 담고 있지 않나? 비올 구름이 아니더라도 햇볕을 좀 가려줬다면 하고 말이다. 그리고 비를 머금은 구름이 비를 쏟아 부어 주었으면 더위를 식힐 수 있을 텐데 하면서 구름을 원망하기도 하지 않았는가?
날씨가 더워도 바람이나 구름을 탓하거나 원망하기보다 더운 날씨를 넘어서서 슬기롭게 이겨낸 사람만이 이번 여름이 즐거웠을 것이고 행복했을 것이고 다음 여름을 기다릴 것 아니겠는가?
오늘 아침에 이런 말을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할 것인가? 남을 원망하거나 탓 할 것이 없음을 이르는 말 아닌가? 지금 공부하는 우리 학생들이나 우리 선생님들은 수원수구의 낱말을 떠올려 봤으면 한다.
날씨가 더운데 교실에 에어컨이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한다고 없는 에어컨이 갑자기 생길 수가 있나, 그렇다고 더위가 사라지나.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함으로 인해 더욱 더워지고 스트레스만 가중되는 것 아니겠는가? 학생들도 교실에 에어컨이 없고 바람이 불지 않고 불쾌감을 주는 환경이라고 원망하고 불평한다고 환경이 갑자기 바뀌어지나, 더위가 사라지나, 공부가 잘 되나? 그렇지 않은 것 아닌가?
우리 환경이 열악한 것은 교실뿐만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살펴보면 환경이 정말 어렵다. 1,000명이 넘는 학생들 중에 자신의 환경을 만족하는 학생들은 아마 1%도 안 될 것이다.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해 힘들어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이혼 등 가족문제로 인해 힘들어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학비문제로 인해 힘들어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건강문제로 인해 힘들어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또 이성, 친구문제로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진로문제로 힘들어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힘들게 생활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으리라 본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수원수구(誰怨誰咎)해야 하나? 부모님을 원망해야 하나? 가정을 원망해야 하나? 친구를 원망해야 하나? 선생님을 원망해야 하나? 학교를 원망해야 하나? 사회를 원망해야 하나? 자신을 탓해야 하나? 부모님을 탓해야 하나? 선생님을 탓해야 하나? 친구를 탓해야 하나? 머리가 나쁘다고 한탄만 해야 하나? 돈이 없다고 타령만 해야 하나? 건강이 나쁘다고 비관만 해야 하나?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포기만 해야 하나?
원망하는 것, 탓하는 것, 핑계하는 것, 한탄하는 것, 타령만 하는 것, 비관만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적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대상이다. 우리에게서 사라져야 할 것들이다. 이것들은 모두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할 뿐이다. 자신을 망치게 할 뿐이다. 자신을 지게 만들 뿐이다. 자신의 의욕을 꺾을 뿐이다. 자신을 낙오자로 만들 뿐이다.
자신의 처지를 넘어서야 한다. 자신의 환경을 넘어서야 한다. 자신의 형편을 넘어서야 한다. 자신의 처지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자신의 환경에 갇혀 있어도 안 된다. 자신의 형편에 갇혀 있어도 안 된다. 자신의 처지와 환경과 형편에서 탈출해야 한다.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자유가 있다. 그래야 성공이 있다. 그래야 여유가 있다. 그래야 생기가 있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그래야 꿈이 있다. 그래야 비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