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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학원 스포츠, 운동보다 학업이 우선이다

일본 효고(兵庫) 현 니시노미야(西宮) 시 고시엔야구장. 5만 관중이 꽉 들어찬 가운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일명 고시엔대회) 결승전이 열리고 있다. 8회까지 0-4로 뒤져 패색이 짙던 사가키타(佐賀北)고의 3루수 소에지마 히로시(副島浩史)가 타석에 들어섰다. 밀어내기로 1점을 빼낸 뒤 계속된 1사 만루 찬스에서 히로시가 친 타구는 왼쪽 관중석을 훌쩍 넘어갔다. 사가키타고가 무려 4,081개 학교가 참가한 이 대회에서 우승기를 거머쥐는 순간이었다.

이 경기는 89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시엔대회에서 가장 극적인 승부였으나, 이보다 더 감동적인 사연은 구장 밖에 있었다. 18명의 선수로 구성된 사가키타고는 야구 특기생 제도가 없다. 선수들은 모두 현지 사가의 중학교에서 진학한 일반 학생들로서 대부분 운동을 하기에는 왜소한 체구라고 한다. 학교측에서 나오는 운영비도 연 60만엔 정도로 야구방망이와 공을 사기에도 빠듯하고, 연습장도 축구부와 함께 썼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감독은 야구 선수 경험이 없는 이 학교 국어 교사가 맡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연습 스케줄이다. 정과 수업을 마치고 하루 2, 3시간 정도 연습을 했으나 이마저도 절반 이상은 기초 체력을 다지는데 썼다. 교내 시험이 다가오면 1주일 정도는 아예 야구와 담을 쌓았다. 물론 야구부를 운영하는 일본내의 모든 학교가 사가키타고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학업을 전폐하고 오로지 운동에만 몰두하는 우리 나라의 고교 선수들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해묵은 얘기지만 한국의 학원 스포츠는 대학 입시만큼이나 그 경쟁이 치열하다. 모두가 최고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최고를 만들기 위해 많은 선수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일단 청소년기에 운동에 발을 들여놓으면 공부나 대인 관계는 엉망이 되기 일쑤다. 정과 수업까지 마치고 연습 시간을 잡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를 지키는 학교는 많지 않다. 대부분 오전 수업만 받고 연습장으로 향하거나 이마저도 중요 대회가 다가오면 수업은 뒷전이다.

엘리트 스포츠를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선수간 경쟁을 부추기면서 상대적으로 학력에는 관대한 체육특기자 제도에 있다. 예를 들어 야구의 경우 각 대학들이 정해 놓은 자격 요건은 ‘전국대회 8강 혹은 4강 진출과 수능성적 60~80점 이상‘이다. 50여개가 넘는 고교야구팀 가운데 전국대회 8강 또는 4강에 들기 위해서는 죽기살기로 야구에만 매달려야만 한다. 그러나 객관식으로 치러지는 수능성적의 60~80점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점수다.

고교를 졸업해도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선수가 수두룩하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면 이제라도 ‘학원 스포츠’의 원칙과 한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스포츠는 청소년기에 습득해야할 다양한 경험 가운데 하나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배워가는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이 운동기계로 성장해 나중에 사회인으로 정착하기 위한 소양과 지혜를 얻지 못한다면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멍에로 돌아온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운동에 관심이 많더라도 일단 학생의 신분이라면 ‘先 학업, 後 운동’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체육특기자 자격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전국대회 성적이 좋더라도 일정 수준의 내신성적과 수능성적을 갖추지 않으면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도록 규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운동 선수라 해도 정규 수업까지는 반드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어기는 학교에 대해서는 행․재정적인 제재를 가함으로써 ‘학원 스포츠’의 위상을 바로 세워야 한다.

우승은 커녕 본선 진출마저도 하늘의 별따기라 불리는 고시엔 대회에서 숱한 야구 명문고를 제치고 정상에 선 비결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사사키타고 감독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시간을 잘 지키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된다” 운동과 관련된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야구 선수와 감독이기 이전에 학생이고 교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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