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야, 얼굴은 잘생겼는데 성질 더러운 여자랑 얼굴은 못생겼는데 성격이 좋은 여자가 있다면 말야, 누구랑 결혼할래?”
딱딱한 공부시간의 정적음을 깨는 헌영이의 생뚱맞은 제안에 교실 안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나중에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헌영이는 늘 공부 이외의 딴 얘기로 분위기를 업그레이드 놓을 때가 많다. 끼가 넘치고 두뇌 회전이 빠른 헌영이는 사교성이 좋아 늘 많은 친구들을 매달고 다니는 남학생이다. 인정도 많은데다 의리도 있어 겉으로 드러내어 표현하진 않지만 속으로 무척 아끼는 녀석이다.
진도 나가기가 바쁠 평상시 같으면야 쓸데없는 소리말라며 지청구를 먹였을텐데, 저절로 긴장이 풀어져 노곤노곤해지는 6교시의 느슨함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전체 논의 주제로 삼아보자고 했다. 그러자 남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의의를 제기했다.
“야, 세 번째는 없냐? 얼굴은 잘생기고 성격까지 좋은 여자. 둘의 좋은 점만 짬뽕시키면 딱인데 말야.” “그럼 모두 3번을 하게. 그러면 질문이 안 되지? 세상 일이란 게 그렇게 입맛대로 되는 게 아니거든. 둘 중의 하나만 골라야 돼.”
헌영이가 그 털털한 웃음을 매달고 꼭 둘 중의 하나여만 한다고 하니 남학생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여학생들도 덩달아 숙연해졌다. 남학생들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까를 궁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 또한 얼굴만 예쁘면 다 용서된다고 하는 요즈음 세태를 반영해 어떤 얘기들이 나올지 정말 궁금했다. 얼굴이 예쁜데다가 공부도 잘하면 금상첨화라고 하면서, 못생긴 여자가 공부를 잘하면 독하다고 하는 유머가 우스개소리로 치부될 일은 아닌 외모 지상주의가 팽배한 현세태이기 때문이다.
“전요, 성격이 좋은 여자랑 할거예요. 이런 말도 있잖아요. 여자 하나 잘 못들이면 집안이 망한다잖아요.” “저두요, 못생긴 것은 성형수술 시켜서 데리고 살면 되지만요, 성질 더러운 것은 절대 못고쳐요?” “성질이 나쁜 여자들은요, 우리 쪽의 부모님을 모실려고 하지 않고 혼자 편하게만 살려고 해요. 그래서 남편은 부모와 아내 사이의 중간에서 너무 힘들어요.” “친구들이랑 술도 한 잔 하고 집에 데리고 와서 같이 놀고 싶어도 성질 나쁜 여자는 그것을 용납 못해주고 바가지 긁으니까 착한 여자가 나아요.” “얼굴 예쁘면 바람필 가능성이 많잖아요. 그래서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주위에서 이혼남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거구요, 그럼 부모님 얼굴에도 덩달아 먹칠하는거니까 불효하는 거죠.”
남학생들은 나의 예상을 완벽하게 깨고 후자 쪽에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었다. 후자를 택한 이유가 전혀 어린아이답지 않은 아주 현실적인 이유라서 깜작 놀랐다. 결혼 후의 일어날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구체적으로 얘기하는데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결혼을 바로 앞둔 적령기의 남자들이나 할법한 소리를 아직 철부지10대인 초등 6학년 학생에게서 듣다니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반대로 아주 소수의 의견이었던 얼짱을 택한 의견도 나름대로 이유가 분명했다.
“못생긴 애와 결혼하면 2세는 못난이가 될 거고, 3세는 더더욱 못생긴 애가 나와서 안됩니다.”
외모가 예뻐서가 아니라 2세 3세를 논하는것을 보니 참 뭐라고 할까 우리 세대와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치만 컸지 겉으로는 늘 생각없이 사는 것 같고, 내가 원하는 대로 가지 않아 애를 먹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나름대로 뚜렷한 결혼관을 가지고 의사표현하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과연 그렇게 머릿속의 이론처럼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우리반에 여학생이 한명 전학왔을 때……. 남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생님이 얼른 교무실에 가서 얼굴이 예쁜지 보고오라고 했고 덩달아 옆반 남학생들까지 술렁이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게 얼굴부터 따지는 놈들이 정말 외모하고는 상관없는 여성을 고르게 될까 싶었다. 사랑의 감정이라는게 그렇게 이론대로 될지…….
어쨌든 늘 웃음을 매달고 사는 헌영이 덕분에 한 시간 진도는 나가지 못했지만 맘껏 웃어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