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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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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1학년도 투표할 줄 알아요"

"자, 1학년 친구들. 오늘은 우리 반의 대통령을 뽑는 날이에요."
"선생님, 반장 선거 하는 날이지요?"

"그래요. 오늘은 우리 반의 반장과 부반장을 여러분들이 직접 뽑는 날이랍니다. 1학기 때 선거를 해 보았지요? 오늘 반장 후보가 될 사람은 1, 2 학기 때 모둠장을 했던 친구들 10명이 후보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1학기 때 반장과 부반장을 했던 친구들은 2학기 때에는 후보가 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다른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반장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예, 선생님. 친구들을 잘 도와주고 선생님이 안 계실 때에도 우리 반을 잘 이끌어 줘야 해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잘 해야 해요."

"그래요. 반장이 되면 다른 친구들보다 뭐든지 열심히 하고 규칙도 잘 지켜야 해요. 그래야 우리 1학년을 대표할 수 있고 친구들이 본받을 수 있겠지요?"

통상적으로 1학년은 담임의 추천으로 반장과 부반장을 임명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1학기에 우리 1학년 아이들은 자기들 손으로 임원을 선출했었다. 그 때 아이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얼마나 좋아했는 지 모른다. 친구들 이름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반장을 선출하다보니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자기가 뽑은 친구 이름을 말하지 않는 거라고 해도 누구를 뽑았다며 종알대고 다니던 아이들, 친구 이름을 잘 모르니 뽑고 싶은 친구에게 가서 이름을 써달라는 아이까지 있었다.

뽑아놓고 보니 우리 반에서 제일 개구쟁이인 시원이가 반장으로 뽑혀서 고민 아닌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시원이는 기대 이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뛰다가도 친구들과 떠들고 놀다가도,

"아니, 시원이는 반장인데 그렇게 뛰면 어떻게 하니? 반장이 반장다워야지!"
친구들이 한마디씩 하는 말을 듣던 시원이가 어느 날인가는
'선생님, 저 반장 포기할래요."
"그래? 너무 힘들어서?"
'예, 선생님. 마음대로 까불지도 못하고 너무 힘들어요."

"아니야, 시원이가 열심히 잘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은데 조금만 더 참고 노력해 보자. 너를 반장으로 뽑아준 친구들을 실망시키면 안 되지? 지금도 아주 잘 하고 있어요."

그렇게 나름대로 반장이라는 직함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시원이는 1학기 내내 정말 반장다운 그릇으로 뭐든지 열심히 하는 아이로 변했다. 복도를 다닐 때면 두 손을 앞으로 곱게 개고 사뿐사뿐 걷는 모습, 아무리 바빠도 복도에서 뛰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만큼 자신을 통제하는 모습이 역력해서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나도 할 수만 있으면 반장의 권위를 세워 주려고 노력했다.
"아니, 시원이는 반장이라 그런지 글씨도 제일 예쁘게 잘 쓰네. 시원이가 걸어다니는 모습은 아주 양반 걸음이구나."

여덟 살 소년에게 씌워진 반장의 굴레를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으며 개구쟁이 소년에서 의젓한 학급 대표로 거듭난 작은 꼬마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가능성과 교육의 힘에 나 자신도 감동했었다. 만들기를 많이 하는 시간에 교실 바닥에 쓰레기가 생기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비를 들고 쓸고 다니며 반장으로서 친구들의 모범이 되려고 애쓰던 모습을 보여주던 아이였다.

'선생님, 2학기에도 반장하고 싶은데 하면 안 되요?"
"시원아, 한 번 반장은 영원한 반장이야. 너는 2학기에는 반장이 될 수는 없지만 너는 항상 반장인 거야. 그러니 1학기 때처럼 반장의 모습으로 행동해야 하는 거야. 할 수 있지? 내년에 2학년 때 다시 뽑힐 수 있도록 좋은 모습으로 열심히 공부하렴."

오늘 우리 반의 반장 선거에는 20명 중에서 10명이 출마했다. 출마한 어린이는 자기 이름을 써도 된다고 했지만 희라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썼는지 한 표도 나오지 않았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가 나올리 만무했다. 다들 자기 이름을 썼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2차 결선 투표까지 치러서 12표로 세준이가 당선되었다.

10명의 아이들이 각자 출마 소견 발표를 하고 친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유세장의 모습을 연출했다. 1학기 반장이 한 표씩 이름을 부를 때마다 칠판에 적어가는 나도 행복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훌륭한 정치 지도자를 뽑는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1학기 임원들이 나와서 선거 종사원이 되어 이름을 부르고 맞게 불렀는지 후보자들이 한 표씩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서 당선자를 결정했다. 1학기와는 달리 한 표도 무효표가 나오지 않았다. 가끔 친구의 글씨를 알아 본 개표 종사원들이 누구 글씨라고 말하는 것만 빼면 완벽한 선거를 치른 셈이다.

12표로 당선된 세준이에게는 축하의 박수와 함께 8표를 얻은 미희와 악수를 시키며 위로하게 하고 미희는 축하의 인사를 건네게 했더니 아이들도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승자와 패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1학년 아이들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와 어색한 악수를 하며 축하해 주는 미희의 볼이 붉어졌다. 세준이도 미희를 위로하며 악수하는 게 부끄러웠는지 볼이 붉어졌다.

그 다음은 부반장 선거라서 1학기 때 임원했던 아이들을 빼고 나니 15명의 아이들이 출마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모두 출마를 시켜서 당선된 사람은 반장 후보로서 자기 이름을 써내지 않은 희라와 신원이가 부반장에 선출되었다.

"모두 축하합니다. 1학기 때 반장인 시원이, 부반장인 주아와 재혁이도 그 동안 고생했어요. 앞으로 나와서 친구들의 박수를 받으세요. 그리고 2학기 임원도 함께 나와 주세요."

친구들 앞에서 1학기 임원으로서 이임인사를 하는 아이들과 2학기 임원으로서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꼬마들의 모습을 보니 장난꾸러기 아이들 모습이 아니었다. 먼 후일 이 고장과 이 사회, 이 나라를 떠받칠 귀중한 대들보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너희들이 이만큼 자랐구나. 비밀 선거이니 집에 가서도 누구를 찍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친구들이 서로 서운할 수도 있으니까 비밀로 하는 거야. 그리고 뽑아준 친구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중요한 거란다. 이제부터 세준이는 우리 반의 대표이니까 반장으로서 하고 싶은 것을 말해 보겠니?"

"예, 선생님. 친구들이 저를 반장으로 뽑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할머니 말씀, 부모님 말씀도 잘 듣겠습니다. 복도에서 뛰지도 않고 공부도 지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세준이가 약속한 것을 잘 지키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축하의 박수를 보냅시다."

여덟 살 꼬마들이 비밀스런 투표를 하고 개표 종사원이 되어 당선자들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 선거관리인이 되어 튜표 용지를 관리하는 모습, 어눌하지만 친구들 앞에 나와서 몸을 뒤틀며 소견 발표를 하던 모습, 자기가 약속한 선거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모습을 생각하니 나의 마음도 높아진 가을 하늘만큼 청명해진 시간이었다.

부반장이 된 신원이에게,
"신원아, 이제는 부반장이니 연필을 입에 물고 빠는 것도 못하겠지? 독서 시간에 재윤이랑 놀고 싶은 것도 참아야겠지? 도토리 방울처럼 뛰어다니는 것도 참아야겠지?
했더니,

"예, 선생님. 부반장이 되었으니 모범생이 될래요!"
하며 오늘 중간 모임 시간에는 떠들지도 않고 의젓하게 서 있어서 얼마나 웃음이 나오던지. 만들기 시간에도 다른 때 같으면 엉덩이에 뿔이 나서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할텐데 오늘은 꿈쩍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만들어냈다.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그릇의 크기에 따라 그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같은 가 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완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2학기 임원이 된 1학년 꼬마 정치가들에게 힘찬 희망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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