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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e-리포터' 讚歌

2차 대전이라는 외적 조건에 의해 개인의 존엄성이 무시된 사회를 고발한 소설이 있다. 게오르규의 대표소설인 <25시>는 인간 부재의 상황, 마지막 시간이 지나가 버린 후의 폐허의 시간, 메시아가 와도 구원해 줄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을 의미한다.

13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하는 주인공과 부인, 그의 부모 외에 변호사이자 작가인 트라이안 코루가 일가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을 희생물로 만들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여준다. 게오르규는 이러한 극한의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인간 회복의 길뿐임을 역설하고 있다. 전쟁의 부조리성과 그 냉혹한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고발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현재는 과거처럼 이념에 의한 인종청소와 전쟁이라는 참화가 많지는 않다고 해도 그에 못지않은 석유를 둘러싼 추악한 전쟁, 종교를 중심으로 한 전쟁 등 예전 못지않은 전쟁이 지금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이때에도 가르침을 줄 수 있기에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책이 아닌가 싶다.

실제 작가인 게오르규는 잠수함의 승무원이었다고 한다. 알다시피 옛날 잠수함에는 꼭 토끼를 태웠다. 토끼는 산소와 수압 같은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는지 여부를 사람보다 먼저 느낀다. 지금이야 첨단 계기가 그런 것들을 계측하여 경고하겠지만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게오르규가 탄 잠수함의 토끼가 호흡 곤란으로 죽자, 선장은 보통사람 보다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게오르규에게 토끼의 임무를 대신 맡겼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옛날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고 탄광에 들어갔다. 지하에서 새어 나오는 무색무취의 유독가스를 판별하는 생물 계기판인 것이다. 카나리아가 지저귀는 것을 멈추면 갱 안에는 유독가스가 가득 찼다는 증거다. 민감한 토끼나 카나리아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위험을 감지하고 경고하는 자들이 이 사회에도 있다 . 게오르규는 그 체험을 바탕으로, 사회를 감시하는 작가의 사명을 ‘잠수함의 토끼’에 빗댔다.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면 교육계에서 잠수함의 토끼요, 탄광속의 카나리아 같은 구실을 하는 사람들을 e-리포터라고 말하고 싶다. 무릇 현장 속에서 일어나는 제반 현상을 바로 옆에서 본 사람들만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 아무리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지식이나 보는 눈이 넓다고 해도 숲속의 나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때에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고, 실상을 가감 없이 알려주는 일을 e-리포터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식물학자 리비히(J.Liebig)는 1840년 󰡐필수 영양소 중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라는 최소의 법칙(Law Of Minimum)을 내놓았다. 가령 질소, 인산, 칼륨, 석회 중 어느 하나가 부족하면 다른 것이 아무리 많이 들어있어도 식물은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큰 교육정책은 교육부라는 기관에서 결정하겠지만 이것들을 제대로 시행하거나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현장의 교직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 중에서도 숫자는 비록 적지만 e-리포터들이 최소의 법칙이 유용함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리포터를 한지가 1년 반이 넘어 섰다. 앞서 활동하셨던 선배 e-리포터들의 관록과 활동에 비한다면이야 '새 발의 피' 같아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래도 조금씩 글을 한 편 두 편 기고하다 보니 이제 100번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百이라는 글자에 뜻을 두다보면 어떻게 보면 꽉 찬 듯 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千이라는 글자에 다가가기 위한 기본 바탕이 되는 숫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끔 쌈닭 마냥 논쟁적인 글을 올리다 보니 여기저기서 공격을 받곤 하지만 그런 것도 모두 교육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일임에 다행함을 느낀다.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하기 보다는 이러저러한 생산적인 논쟁을 통해 더 나은 방향의 e-리포터 제도가 유지되었으면 하고, 앞으로도 더 많은 교직원들이 가입하여 좋은 의견을 수시로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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