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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서울 생활 1)

비몽사몽간에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밤새 잠을 자면서도 지하실의 씁스레한 역겨운 곰팡이 냄새로 깊이 단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가 뒤늦게 잠을 이루게 되었다. 어두컴컴한 실내는 밤인지 낮인지 분간은 잘 안되었지만, 사람들은 분간할 수 있었다. 벌써 시간이 열시쯤은 되는 것 같았다. 지난밤에 너무 늦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웨이터가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한다.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화장실이라야 별로 크지 않은 곳이었다.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환풍기도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는 마당에 대변을 보고 내리지 않은 상태 그대로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이었지만 고장이 나서 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 대변을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치우냐며 멈칫하고 물러서 있었다. 그랬더니 시범을 보여 줄 테니까 앞으로는 잘 해보라고 한다.

한 쪽 귀퉁이에 벽에 기대어 있는 주걱 같은 것을 가지고 와서 나일론 바가지로 물을 확 끼얹은 후 고여 있는 곳을 퍼서 양동이에 담는 것이다. 그리고 물을 퍼부어 주위를 깨끗이 쓸어 담고 여러 번 헹구어 양동이에 퍼 담는다. 그리고는 퍼 담은 양동이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길가의 하수구에 부어 버리는 것이다. 이때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가며 재주껏 부어 버려야 한단다. 다시 화장실로 들어와서는 화장실에 지저분한 부분을 깨끗이 쓸고 걸레로 닦아서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닦는다. 앞으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화장실 청소를 당분간 하여야 한다며 자세하게 알려 준다. 시골서 밭에 거름을 주기 위해서 아버지를 따라 리어커에 ×장군(화장실의 오물을 담는 통)을 싣고 따라는 다녀 보았지만, 실제로 퍼 본 일은 없었다. 그리고 시골 화장실에서 인분은 오랜 된 것이기 때문에 냄새도 그렇게 지독하게 나는지는 몰랐었다.

원래 이곳의 화장실은 수세식으로 되어 있었으나 고장이 나서 보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업이 잘 되면 빨리 수선을 하도록 할 것이었으나 유류파동으로 연말이 되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경기가 얼어붙어서 손님들이 예년에 반도 오지 않는다며, 종업원 대부분이 월급도 받지 못하고 손님들의 팁에 의존하는 듯하였다. 오늘 화장실 청소하는 방법을 알려준 웨이터는 인천에 거주하며 이곳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니는데, 낮에는 대학교에 다니고 저녁에만 이곳에 와서 일을 한다고 한다. 물론 웨이터 일도 하지만 경리담당을 맡고 있다고 한다. 키도 크고 하얀 피부에 멋쟁이처럼 얼굴이 잘 생겼다. 이번에는 지하실 바닥에 장마 후 빗물 고여 있는 듯 베어 나온 물을 훔쳐 내야한다. 밤새 새어나온 물은 상당히 많이 고여 있었다. 걸레로 바닥을 훔쳐서 두어 양동이를 걷어낸 후에야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을 닦아낼 수 있었다. 아침을 먹으라고 한다. 이 아침식사는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이다.

식사하는 곳으로 가보니 테이블 위에는 달랑 김치와 고추장과 밥만 있는 것이다. 밥도 꽤 넉넉하게 있는 것도 아니다. 다섯 명이 먹기에는 턱없이 모자라 보였다. 어제 저녁에 밥이 없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났다. 밥을 먹으면서 영업부장이 퉁명스런 목소리로 “오늘은 밥을 먹고 홍보 전단지를 돌리러 다니도록 하시오. 요즈음 연말연시인데도 유류파동으로 손님들이 술을 먹으러 통 오지를 않아요. 각 직장 사무실을 다니면서, 광고지를 돌리면서 이 전단지를 가지고 오시는 분들은 술값만 받고 안주를 공짜로 드린다는 점을 강조하세요.” 반 강압적인 어투에 말을 듣지 않으면 문책이라도 하려는 듯 하나하나 얼굴을 훑어보며 이야기를 한다.

“각자 광고지를 가지고 밥 먹은 후에는 바로 출발하도록 하고, 갔다가 온 후에는 부사장님께 보고를 하세요.” 모두들 아무 소리도 않고 밥만 먹고 있었다. “요즘 정부에서는 광고 안내판과 네온사인도 규제를 한다고 하고, 각 산업체와 가정에서도 대대적으로 에너지 절약 운동을 펼치려는 모양입니다. 밤 10시 이후에는 광고용 전광판을 모두 끄라고 하는 대대적인 에너지 절약 운동을 펼칠 모양입니다. 그러면 손님들은 더욱 오지 않을 텐데 걱정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거 아이가, 잔소리 그만 하고 오늘 단단히 마음묵고 전단지 잘 돌리고 오도록 해라~ 이. 알았제?” 부사장이 한마디 하자 모두 “예!,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각자 옷을 입고 부사장 앞으로 섰다. 더 이상 주언 부언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는 듯 하였다. 부사장은 손에 지피는 대로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것이다.

나는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밖으로 나왔다. 기가 막혔다. 하얀 햇살이 쏟아지는 햇살아래서 살펴본 구두는 지하실에서 배어 나오는 물에 젖어서 허옇게 곰팡이가 슬은 것 같았다. 가게 앞에서 서로 헤어져서 먼저 가까운 사무실을 찾아가서 홍보를 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자꾸만 내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신세가 보통 처량한 신세가 된 것이 아니다. 이 기분으로는 도저히 광고지를 돌리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말없이 주기는 주었지만 그들이 이 광고지를 보고 올 사람들도 아니었다. ‘될대로 돼라’는 식으로 무작정 걸었다. 청계천 쪽으로 마냥 걸었다. 사람들 만나는 것이 싫어서 큰길에서 좁은 길로, 좁은 길에서 외딴길로 외딴 길을 마냥 정처 없이 걷기만 하였다.

그동안 정겹게 생활하던 가족들이 생각이 났다. 그러나 단단히 마음먹고 온 이 길을 그냥 떠나갈 수는 없었다. 한없이 걷고 또 걸으면서 한적한 곳으로 돌아다니다 보니까 배도 고팠지만 이제 너무 멀리 와서 가는 시간만 하여도 상당히 걸릴 것 같았다. 다리도 아팠다. 돌아오는 길에 광고지를 버릴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마땅치 않았다. 내가 찾는 곳은 허름한 공중 화장실이었지만 찾기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 곳에나 버려도 될 것을 꼭 이 광고지를 우리 싸롱의 식구들이 볼 것 같아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버릴만한 곳을 찾으며 계속하여 갔던 길을 되돌아오며 찾던 중 그야말로 내가 필요로 하는 허름한 공중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은 *이 그득 찬 상태였다. 전단지를 반 정도를 그냥 화장실 속에 쳐 넣어 버렸다. 그것도 또 볼 것 같아서 깊이 밀어 아무도 볼 수 없도록 쳐 넣어 버렸다. 거의 가게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3시 정도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와 있었다. 부사장이 기다리고 있다며 가보라고 하여 부사장 앞으로 갔다.

부사장은 “야!, 오늘 몇 장이나 광고지를 돌렸나?”며 다짜고짜로 묻는다. 나는 “한 200장 정도 돌렸는데요.”하였더니 “임마가 정신이 없구먼. 야!, 이누마야 어디어디 돌린 기야?” “예, 저~ 가게를 돌아다니며 돌렸는데요.” 엉겁결에 대답은 하였지만 거짓말에 서툰 내 말과 행동에서 거짓말이라는 것을 단 번에 알아보았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거짓말을 하면 용서해 주지 않는다. 알았나?”하고는 귀뺨을 때리려다 그만 두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국수를 끓이고 있었다. 이 국수가 점심 겸 저녁식사가 되는 것이다. 빨리 식사를 마치고 저녁에 오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청소도 하여야 하고 옷도 갈아입고 주방에 안주거리와 그릇 술등을 진열해 놓고, 무대 위에도 멋지게 잘 꾸며야 하는 것이다. 겨울철의 저녁 해는 순간적으로 짧아지는 탓인지 벌써 밖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나비넥타이를 주면서 목에다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은근히 오늘은 어떤 손님들이 오게 될는지 기다려진다. 술집에 종사하는 아가씨들도 모여들기 시작하고 4인조 밴드는 벌써 신나게 뽕짝을 울리고 있었다.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탓이런가.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 서서 당당히 안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만 머쓱하였지만 한 번하고 나니 다음부터는 부끄러움도 쑥스러움도 없었다. 이것도 내가 맡은 일이러니 생각을 하고 보니 별 이상할 것도 없었다. 내가 하는 모습을 보고 어제 시범을 보였던 웨이터가 내가 하는 모습을 보고는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주방에도 화장실에도 지하실 바닥에서도 바쁘게 움직이며 활동을 하다 보니 벌써 자정이 되어간다. 너무나 얼굴이 예쁜 아가씨들이 술집에서 술을 먹고 술손님들의 뜻에 따라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너무 안 되었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되었다. 오늘은 손님이 예상외로 많이 왔기 때문에 잠자기 전에 국수를 맘껏 끓여서 먹는다며 부사장이 기분이 좋아 한마디 하고는 자기는 밖으로 아가씨를 데리고 나갔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 갔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늘 함께 하며, 나의 가장 작은 것도 소외계층의 어려움에 있는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삶이 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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