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아 처가(妻家)가 있는 안면도를 찾았다. 평소 주말이면 도회지에서 몰려드는 차량으로 몸살을 앓던 도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한산한 모습이었다.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이곳 안면도도 기름유출에 따른 후유증은 피해갈 수 없었던 듯 했다. 연육교를 건너 포구에 이르자 각종 수산물로 성시를 이루던 어물전에는 사람 구경조차 어려울 만큼 파장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창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야할 배들은 포구를 가득 메운 채 거친 파도에 떨고 있었다.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지 두 달. 어업 면허를 갖고 있는 처가(妻家) 어른들은 당장의 현실보다 앞으로가 더 큰 걱정이라며 땅이 꺼져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원봉사차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아도 숙박을 하거나 음식점을 이용하는 일은 극히 드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지역 주민들은 생업을 제쳐놓고 지원금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긴급 생계지원금으로 설 차례상을 차리기는 했으나 그 이후가 더 큰 걱정이라고 한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처가 식구들과 함께 바닷가로 나가 서해안의 별미를 잡는 체험을 한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지는 모르나 대나무처럼 긴 ‘맛조개’와 막대풍선처럼 길쭉하면서도 수축과 이완 능력이 뛰어난 ‘게불’을 잡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맛조개를 잡으려면 개펄에 나있는 숨구멍을 찾아 그 위에 소금을 살짝 뿌리면 맛조개가 고개를 내미는데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나꿔채면 된다. 게불을 잡는 것도 재미가 깨를 볶는다. 개펄에 나 있는 구멍을 찾아 삽으로 계속 파들어 가다보면 어느 순간 붉그스레한 물체를 만나게 된다. 구멍속으로 달아나려는 게불을 잡아 끌어당기면 몸체가 늘어나면서 밖으로 딸려 나온다. 큰 것은 30cm가 넘는 것도 있다.
기름 유출의 여파 때문에 맛조개와 게불이 사라졌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안면도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꽃지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텅빈 주차장만큼이나 드넓은 해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해변으로 내려서자 특유의 바닷내음이 온몸으로 밀려들었다. 해변 어느 곳에서도 기름 유출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삽을 들고 개펄에 난 구멍을 찾아 파내려갈 때마다 선홍빛 게불이 줄줄이 끌려 나왔다. 불과 1시간 남짓 작업했을 뿐인데, 게불 50여 마리와 맛조개 10여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꽃지의 명물인 할미․할아비바위에 붙어있는 굴껍데기를 벌려보니 맛좋은 굴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안면도의 바다는 살아있었다. 그저 고맙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조금이라도 오염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생명체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기름 유출로 인하여 안면도 일대에도 타르 덩어리가 밀려들어오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신속하게 제거하여 기름이 스며들 여지가 없었다는 주민들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다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정작 이를 믿어줄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태안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검은 재앙의 흔적부터 지우는 것이 급선무일 듯 싶었다. 태안 주민들도 언제까지나 지원금에만 의존할 수 없다. 그들이 자력(自力)으로 일어나 다시 생업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국민들부터 바다에 대한 불신의 벽을 걷어내야 한다. 태안의 해변에는 청정지역에서만 자란다는 맛조개, 게불, 굴 등이 여전히 둥지를 틀고 있다. 이번 주말, 자동차에 삽과 호미를 싣고 가족들과 함께 태안 해변으로 달려가 보라. 인간의 편견을 뛰어넘는 바다의 놀라운 생명력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