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학교 자율화 3단계 추진계획’을 두고 교육 현장이 술렁이고 있다. 교육 관련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자율과 다양성을 허용한다는 점에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시행 과정에서 지나친 경쟁이 유발되고 그로 인한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엄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교육 당국의 자율화 조치를 두고 학부모들이나 교사들이 염려하는 부분은 입시지옥의 재현이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중학교 1학년의 경우, 이미 진단 평가 결과가 공개되어 무한 경쟁에 돌입했다. 점수 위주의 경쟁으로 평가의 신뢰성은 확보되겠지만 수동적인 태도를 유발하고 개인주의를 부추기는 등 건전하고 합리적인 가치 의식을 전도시킬 개연성이 높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사회 양극화 현상의 고착화에 있다. 치열한 경쟁 구도는 사회적 희소가치를 독점하고 있는 계층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경쟁이 가속화될수록 투자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자본은 더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 틀림없다. 만약 기득권 계층에 의해 교육을 통한 신분 이동이 가로 막힌다면 사회적 갈등은 수습하기 곤란한 국면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교육 자율화의 가장 큰 문제는 뭐니뭐니해도 국가 경쟁력의 약화에 있다. 교육 분야의 경쟁은 고비용으로 이어져 젊은 부부들에게 출산을 경원시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해마다 증가하는 고령화 현상에 저출산까지 겹친다면 국가 발전의 동력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물론 이같은 문제는 자율화에 따라 당연히 치러야할 댓가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교육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교육 당국의 의지도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자율화가 주어지더라도 대학입시가 점수 위주의 획일적인 선발 방식을 고집한다면 예상외로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의 정황을 살펴보더라도 공교육의 역할과 방향은 대학입시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 동안 국가가 쥐락펴락했던 대학입시 업무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및 대교협법 개정안을 통하여 오는 5월부터 대학협의체(대교협, 전문대협)에 전면 이관된다. 대학이 그토록 열망했던 입시 자율화를 얻은 이상, 공교육 정상화와 경쟁력 강화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대학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점수위주의 획일적인 전형 방식을 고집한다면 초․중등 교육은 그야말로 입시지옥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0교시 수업이나 보충수업, 자율학습이 만연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열반 편성으로 인한 원성도 쏟아질 것이다.
정부가 초․중등교육에서 손을 뗀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다양한 능력을 지닌 인재를 가려뽑을 수 있는 입시제도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일례로 미국의 일류대학들은 수험생들이 단순히 수능(SAT)이나 내신 점수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합격시키지는 않는다. 점수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그 학생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생활했는지를 중요한 평가 자료로 삼는다. 올해 입시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입학사정관제가 주목받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그간 어지간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0교시 수업이나 보충수업, 자율학습이 암묵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교육당국이 금지한 사설 기관의 모의고사도 ‘눈 가리고 아옹’식으로 은근히 진행된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교육당국의 자율화 방안은 음성적인 교육활동을 양성화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환영할만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이제 공은 대학에 넘어갔다. 대학이 어떤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느냐에 따라 이번 자율화 조치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