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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모의고사 횟수’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아이들이 중간고사를 마치고 돌아간 오후, 교정은 마치 산사(山寺)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매시간 시험에 임하는 아이들의 자세는 진지하기만 하다. 특히 입학한 지 거의 2달이 되어가는 1학년의 경우, 처음 보는 시험에 긴장이 되는 탓에 2․3학년에 비해 답안 카드를 교체해 달라고 요구하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은 시간마다 끝난 과목의 정답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희비(喜悲)가 교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표정만은 어느 때보다 밝기만 하다. 아마도 그건 시험으로부터의 해방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문득 아침에 접한 보도 기사가 떠올려졌다. 보도에 의하면, 정부의 학교자율화 방침에 따라 각급 학교는 연간 10회 이상의 학력평가(시도교육청 주관)와 모의고사(사설학원 주관)를 시행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학교장이 마음만 먹으면 한 달에 두 번 이상의 모의고사까지 가능해진 셈이다.

정부의 방침이 발표되자, 각급 학교는 연간 모의고사 계획을 다시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교육과정 평가원과 시도교육청이 주관하는 모의평가는 의무성이 따르지만 평가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감은 없다. 그러나 사설학원 주관으로 보는 모의고사의 경우, 그 비용(1회 9,000원)을 학생이 부담해야 하므로 거기에 따른 학부모의 사교육비 또한 만만치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더군다나 사설모의고사는 출제 범위가 넓어 학교 교사들이 거기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 교육에서 이루어져야 할 전인교육이 무시되어 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편으로 모의고사를 채택해 준다는 조건으로 회사와 학교 간의 보이지 않는 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모의고사 횟수를 늘린다고 아이들의 성적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誤算)이다. 우리 학급의 3월(3월 12일)과 4월(4월 15일)에 치른 연합학력평가(시도교육청 주관) 자체 분석결과 대부분의 아이들이 전월에 비해 성적이 다소 떨어졌으며 그 이유로 아이들은 시험에 대한 부담감으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27일(일) 밤 11시. 5월 초에 있을 중간고사 때문에 휴일을 잊은 채 학원에 다녀온 중학교 2학년인 막내 녀석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험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아내와 나의 면전에서 던진 말이 생각난다. 그리고 "필리핀으로 가고 싶다"며 다시 보내줄 것을 요구하였다. 모름지기 녀석은 작년 일 년간의 필리핀 생활이 그리웠나보다. 그래도 그곳에서는 숨 쉴 여유는 있었는데 말이다.

학교자율화 방침 이전에도 초·중·고 많은 아이들은 방과 후 2곳 이상의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것마저 아이들은 부담된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었는데. 발표 이후, 최근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다. 아이들은 학원 하나를 더 가야만 한다는 사실에 불평했다. 그리고 부모들은 늘어나는 사교육비에 허리띠 하나를 더 졸라매야만 한다.

주먹구구식의 교육 정책이 가져다준 파급 효과는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이제 사교육비는 서민경제에 너무 깊숙이 파고들어 암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만만치가 않다.

내가 아는 한 이웃은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의 학원비를 마련하려고 그나마 한 달에 한 번 하던 가족끼리의 외식을 아예 하지 않기로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매일 학교와 방과 후 학원 생활로 피곤함에 찌든 아이는 하루라도 짜증을 내지 않는 날이 없다며 부모가 아이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며 하소연하였다.

사실 요즘 학교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태가 아이들을 지나치게 입시 지옥으로 내몬 교육정책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공부만 잘하면 그만이다'라는 사고방식이 결국 아이들의 마음까지 멍들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것을 지켜보면서 현실에서 진정 가르쳐야 할 것을 못 가르치는 교사의 마음은 오죽하랴. 따라서 교과부(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자율화 개선에만 급급하지 말고 학교현장에서의 당면과제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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