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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사람을 만드는 교육'으로 되돌아가자


풍경 1.

하교 시간, 종례가 끝나자 아이들이 일시에 밖으로 우르르 몰려 나간다. 안전사고가 염려되어 좌측통행이니 정숙 보행을 수백 수천 번 외치고 지도해도 소용없다. 하루는, 서로 밀치고 먼저 나가려는 통에 현관 앞에 세워둔 화분이 넘어지고 흙이 바닥에 쏟아져 엉망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쓸어 담거나 제자리에 바로 세워두고 가는 학생은 하나도 없다. 답답한 마음에 학생 하나를 불러 세우고 나서 "네가 좀 쓸어 담고 바르게 해놓고 가렴."하니까 의아스러운 눈으로 교감인 나를 빤히 쳐다보며 대뜸 하는 소리 "학원에 가야되니까 저 바쁜데요."하고는 저만큼 가버린다. "허허, 네 이노~옴!"하고 호통을 치는데 어느 새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다. 마음 같아서는 교무실에 붙잡아다가 앉혀놓고 선생님이나 어른에 대한 말버릇부터 시작해서 공중질서나 봉사에 대해 교육을 시키고 싶은데 명색이 교육자가 도망치는 도둑 잡듯 학생을 뒤쫓아 갈 수도 없고….

풍경 2.

점심 급식시간. 오늘의 식당 메뉴는 오곡밥에 맑은 북어 국, 목살불고기에 유기농 쌈과 쌈장, 치즈떡볶이 등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와 치즈가 준비된 날이다. 이런 날은 학교 앞 분식가게가 썰렁하다. 평소에 급식 메뉴가 조금 마음에 안 들다 싶으면 밖에 나가 자기가 먹고 싶은 라면이나 김밥 같은 대용식들을 많이 사먹고 들어오곤 하는 아이들. 오늘은 입맛 당기는 메뉴라 생각했던지 급식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이제 곧 5교시가 곧 시작될 무렵인데 영양사가 허둥지둥 달려와서 보고한다. 내용인 즉, 먼저 줄서서 먹은 아이들이 밥과 고기, 치즈류를 너무 많이 가져다가 먹어버린 탓에 뒤에 온 학생들 사오십 명이 밥과 반찬이 부족하게 되어 추가로 다시 만들어 제공하다 보니 급식이 완전히 끝나려면 이삼십 분 정도 수업을 늦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이야 굶든 말든 나만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배부르면 끝이다?'

풍경 3.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 관리자가 복도를 순시할 때면 아이들 공부에 방해될세라, 혹은 선생님들께 신경 쓰이게 할까봐 슬리퍼 소리도 죽여 가며 조심스럽게 지나가곤 했는데 이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더운 여름날이면 선생님이 자기 사비를 들여 아이스크림을 배달 오게 해서 수업 중 교실에서 아이들과 '먹자 파티'를 벌이는 정도는 이제 흔한 일이 되었으며, 학생 중 누군가의 생일이라도 있는 날이면 아침 자습 시간에 반 친구들끼리 케익이나 피자를 시켜먹느라 배달원의 오토바이 소리에 학교의 정적이 깨지기 일쑤이다.
교실이라는 공간을 신성한 학습장소로서보다 자기네들 기분풀이 하는 놀이터쯤으로 인식하는 분위기 속에서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이 잘 구분이 안되고 선생님이 학생들 비위를 맞추어야 그나마 수업이 진행되는 현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던 민주교실일까?

풍경 4.

까마득한 추억이 되고 말았지만, 선생님이 불러서 교무실에 들어가야 할 일이 생기면 노크하는 것조차 어렵게만 느껴져서 복도에서 한동안을 서성거리며 얼마나 가슴을 졸여야 했던가. 좋을 일로 불려가도 그러했을진대 나쁜 일로 불려가는 경우는 등골에 식은 땀이 나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세월이 흘러서 변하지 않는 것 없다고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행태를 볼라치면 기막히다.
학교에서 내리는 벌의 종류가 어떤 것이든 일단 잘못을 저질러 처벌을 받는 경우라면 학생의 행동이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선생님들 앞에서 자숙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터인데 벌받는 아이들의 표정과 태도를 볼라치면 정반대이니 말이다. 고생을 안 해 보고 자란 도시 아이들에게는 참으로 고역이겠다 싶어 어려운 일을 통해 자기반성을 시켜볼 요량으로, 냄새나는 화장실 청소나 운동장 뿔뽑기 같은 일을 시켜보건만, 힘들어하거나 싫어하기는 커녕 하기 싫은 공부 않하게 돼서 오히려 좋다는 식이고, 선생님들의 지도의 손길이 못 미치는 시간을 이용해서는 말썽을 같이 부린 친구들과 끼리끼리 모여 잡담을 나누기까지 하는 아이들. 벌의 효과가 미미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막연히 사랑과 인내로만 다스릴 수 있는 것일까?

전문직으로 자리를 옮긴 바람에 잠시 교육현장을 떠나있는 필자로서, 지금도 어느 학교에선가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을 풍경들을 떠올리다 보면 어느 때는 쓴웃음이 나오다가 어느 때는 장탄식이 나오곤 한다.
어쩌다가 학교가 이 모양에 이르렀는가. 사람살이의 기본 예절을 소홀히 하고 남에 대한 배려심이 전혀 없는 아이들. 공과 사의 구분을 하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조차 느끼려하지 않는 저들이 커서 만들어갈 세상의 모습은 얼마나 메마르고 살벌할 것인가.

오로지 출세주의와,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을 길러 내는 점수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가정과 학교 모두 인성교육, 인격교육 따위는 아무 쓸모도 없는 양 내팽개친 탓에 아이들의 심성이 비뚤어지고 영혼이 병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공부 하나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그 간판으로 좋은 회사 들어가서 돈 많이 버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자녀들에게 거는 희망의 모든 것이라면 굳이 교육이 존재해야할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공부 좀 못하면 어떤가. 좋은 대학 못 가면 또 어떤가. 그것이 그토록 삶의 행복과 성패를 좌우하는 유일한 척도란 말인가. 허욕의 늪 속에 갇혀 물질적 성공만을 최고의 가치기준으로 삼는 우리 어른들의 빈 껍데기 삶을 자라라는 아이들에까지 강요해서는 안된다.

부모나 교사가 제 자녀나 아이들을 '멋대로 크고 함부로 사는 인생'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는 일은 무책임의 수준을 넘어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다. 제대로 된 부모구실, 교사노릇이 아무리 힘 들어도, 절제와 규율 속에서 더 크게 확장되는 자유의 의미, 예의와 염치 속에서 더 높아지는 자존의 가치를 아이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야한다. 인간답게 사는 법, 더불어 사는 법을 깨쳐가면서 그것이 자신의 인격으로 내면화되고 행동으로 실천되게끔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산다. 그래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을 만드는 교육'으로 되돌아가는 일,  우리 교육의 활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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